도쿄 긴자에 빨간색 대형 클립이 간판처럼 걸린 문구점이 있다. 도쿄에 갈 때마다 빼놓지 않고 다니면서도 심벌을 왜 클립으로 정했는지 늘 궁금해하기만 하다가 이번에 찾아보니, 외국인 관광객도 거기가 문구점이라고 한눈에 알 수 있게 그곳 직원이 디자인한 거라고 ‘이토야 클립의 역사’에 소개돼 있다. 내가 만약 문방구를 차린다면 노랑이나 빨간색 몽당연필을 외관에 내걸고 싶다. 물론 클립도 좋다. 심플하고 아름답고 기능적이니까.
가장 흔한 은색 클립, “끝이 둥근 이중의 고리, 트롬본 같은 모습으로 휘어진 철사”는 클립의 종류 중에서 ‘젬클립’에 속한다고 한다. 클립에도 디자인의 변천이 이어져 종이에 끼우면 하트, 부엉이의 큰 눈, 삼각형, 나비 모양이 되는 제품들이 출시돼 있다. 재질도 황동이나 종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고. 재치와 개성 있는 각종 형태의 클립들을 구경하다 보면 결국 선택을 하게 되는 요인은 취향이 아닌가 싶다. 디자인은 다양해 보여도 “탄력이나 나선을 이용”한다는 점, “소량의 종이나 서장 같은 것을 끼워두는 기구”라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다.
오늘도 이 무생물의 작고 빨간 클립으로 강의 종이를 고정하며 생각한다. 좋은 선생이란 자신의 생각을 학생들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갖고 있는 생각을 잘 펼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거라고 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에 대해서. 좋은 선생, 좋은 자식, 좋은 상사, 좋은 시민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을 하든 비기너의 자세를 잃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늘 3월이 되면 그렇듯, 책가방을 챙기는 마음으로.
조경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