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박수근미술상 김진열 화가
제2회 박수근 미술상 수상자인 김진열 화가는 “물질 중심의 산업사회에서 힘들어하는 현대인의 내면에는 생명과 자연에 대한 삶의 모형이 남아 있다”면서 “나무 그림을 통해 사람들의 생태적 감수성을 일깨우고 싶다”고 말했다. 원주=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7일 강원 원주의 작업실에서 만난 김 씨는 “중학교 땐, 걸어서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통학 길을 친구들과 다니면서 ‘나는 홍익대 미대에 갈 거다’라고 큰소리를 쳤다”며 빙그레 웃었다. 그때껏 제대로 그림 수업을 받아본 적도 없었지만, 그의 의지는 강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던가. 교육열이 높았던 부친이 강릉중학교를 졸업한 그를 서울의 광성고로 유학 보냈다. 광성고는 황유엽 이건용 선생이 미술교사로 근무하던 곳이었다. 모두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들이었다. 재능과 열정은 곧 눈에 띄었고 강습비를 내는 대신 작업실 청소를 하면서 그림을 배웠다. 취업이 어렵지 않으리라는 부친의 권유로 그는 홍익대 응용미술학과에 진학해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대학 내내 회화 작업도 놓지 않았다.
그림이 사람과 사회와 맞닿아야 한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확고했다. 그는 억압적이던 1980년대부터 본격적인 회화 활동을 했다. “나를 미술의 길로 이끈 소년 네로와 같은 이름의 사람이 한 명 더 있지요. 네로 황제. 그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던 시기였습니다. 폭군 네로와 약자 네로가 부딪치던 사회였어요. 그림은 결국 사람이 그리는 것이고 사람이 보는 것이니, 사람이 사는 세상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요.”
‘빈손’, 종이배접에 철판, 아크릴 채색, 2011년작. 박수근미술관 제공
“전남 여수 근처 바닷가로 가서 직접 주워온 금속들입니다. 냉장고 껍데기 같은 게 바다에 밀려오거든요.” 어렸을 적 미제 깡통을 오려 등잔을 만들던 할아버지를 도왔던 그에게 금속판은 오랫동안 손에 익은 재료다. 소금에 절어 비틀린 금속판은, 사람들이 품은 마음의 상흔을 절묘하게 표현해낸다. 그는 “상처를 직시하되 절망에 머물지 않고 미래를 보려 한다”면서 “박수근 선생님도 그런 마음으로 작품을 그리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금속의 질감이 잘 들어맞는 소재가 또 하나 있다. ‘휘어진 듯 곧게’(2016년), ‘거돈사지―불휘깊은 나무’(2015년) 등 최근 수년간 김진열 씨가 집중해서 그리고 있는 나무의 거친 결이 그렇다. “물질만능주의에 점철된 세상이지만, 실은 민초의 근원적 삶이란 나무와 바위 같은 자연과 가까웠지요. 저는 그림을 통해 생명과 자연에 대한 경외를 표현하고, 사람들에게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싶어요.”
강원 강릉에서 나고 자랐고, 30년 넘게 원주에서 그림을 그려온 그는 “강원도의 나무와 바람을 가까이 하면서 자연에 위무받았다”면서 “세련되진 않지만 투박하고도 독특한 자연의 미감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원주=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