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 기숙사 학생들 ‘짐 맡기기 전쟁’
최근 서울 광진구 건국대 민자 기숙사 쿨하우스에서 짐 보관 서비스 업체 ‘오호’ 직원들이 학생들의 짐을 옮겨 싣고 있다. 이 업체는 이날 하루에 건국대 기숙사 학생들의 짐을 담은 박스 300개를 회사 창고에 보관했다. 오호 제공
대학 겨울방학 기간에 기숙사에 있던 짐을 둘 곳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지방 학생들이 늘고 있다. 웬만한 대학가 원룸 월세보다 비싼 민자 기숙사비 부담을 덜기 위해 학생들은 1, 2월에 방을 빼곤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이 같은 학생들을 겨냥해 짐 보관 서비스업체들이 방학 때 짐을 맡아주는 서비스를 새로 만들었다.
학생들이 기숙사에서 방을 빼는 이유는 방학 때만이라도 비싼 기숙사비와 생활비를 아껴 고향집에 내려가자는 생각에서다. 동국대 민자 기숙사에 사는 이모 씨(25)는 “아르바이트만을 해서는 한 달 기숙사비 35만 원과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최근 방을 뺐다”며 “친구들에게 사정해 짐을 여러 곳에 나눠 맡겨 놓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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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보관 서비스업체를 모르거나 이용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한 학생들은 방학 동안 짐만 맡길 방을 임차하느라 애쓰고 있다.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짐 맡길 방을 구한다’는 글들이 쇄도한다. 이마저도 구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학교에 ‘방치’하다시피 한다. 서울의 한 사립대생은 “짐 둘 방도 없어서 학과 사무실에 그냥 짐을 두고 가는 ‘지방러’(지방 출신을 뜻하는 속어) 학생들 때문에 박스가 발에 차일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방학 때마다 민자 기숙사생들이 짐 둘 곳을 찾아 ‘방황’하는 이유로 학생들은 웬만한 대학가 원룸 월세보다 비싼 기숙사비를 들고 있다. 2014년 한국사학진흥재단 조사에 따르면 연세대 ‘SK국제학사’의 기숙사비는 학기(4개월)당 264만 원으로 신촌의 원룸 월세 시세보다 33만4000원 비쌌다. 고려대 ‘프런티어관’ 232만 원, 건국대 ‘쿨하우스’ 219만 원으로 역시 주변 원룸보다 각각 32만 원, 31만 원 더 비쌌다. 서울 시내 사립대가 직영하는 기숙사는 월 20만 원가량을 낸다.
당초 정부는 대학생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재정이 열악한 학교재단 대신 민간 자본이 캠퍼스에 기숙사를 지어 운영하도록 추진했다. 그러다 보니 기숙사를 운영하는 동안 이윤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방 학생들은 학교와의 거리, 주변 원룸보다 가격 대비 양호한 시설, 그리고 특히 여학생들에게 절실한 안전 문제 등을 들어 민자 기숙사를 선호하고 있다.
청년 주거 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 민달팽이유니온이 서울시 산하 서울연구원에 보고한 ‘서울시내 대학생 기숙사 현황 및 주거안정화 효과 연구’에 따르면 2005년 이후 신축된 사립대 기숙사 수용 인원의 절반 이상을 민자 기숙사 수용 인원이 차지한다. 민달팽이유니온 정남진 사무국장은 “민자 기숙사가 기숙사비를 인상하더라도 이를 제재할 방법은 사실상 없는 형편이다”며 “정부, 지방자치단체, 대학이 비용을 부담해 짓고 운영하는 ‘행복기숙사’ 같은 공공형 기숙사 건립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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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자(民資) 기숙사
민간기업이 투자해 지은 대학 기숙사. 보통 완공 뒤 특수목적회사(SPC)가 운영하다 20년 또는 30년 후 학교에 소유권을 넘긴다. 운영기간 중 수익을 내야 하기 때문에 학교가 지은 기숙사보다 비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