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어제 임기 10년을 마치고 귀국해 ‘정치 교체’를 선언했다. 반 전 총장은 “부의 양극화, 이념 지역 세대 간 갈등을 끝내야 한다”며 “국민대통합을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 총장은 “우리나라는 한 민족, 한 나라”라며 “더 분열돼서 시간을 낭비할 때가 아니다. 정권 교체가 아니라 정치 교체가 이뤄져야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귀국인사 정도 하고 끝낼 줄 알았던 반 전 총장은 작심하고 기존 정치권을 비판하며 ‘정치 교체’를 선언했다.
‘정치 교체’는 박근혜 대통령 측이 지난 대선 때 처음 들고 나온 구호였다. 자신의 집권이 이명박 보수정권의 연장이 아니라는 취지였다. 반 전 총장의 최대 경쟁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반 전 총장이 대통령이 된다면 정권 교체가 아니지 않느냐”고 직격탄을 날린 데 대한 대응이다. 반 전 총장은 “지도자의 실패가 민생을 파탄으로 몰고 가는 것을 손수 보고 느꼈다”며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했다. 그러나 ‘정치 교체’가 자신이 차별화하려고 하는 박 대통령이 특허권을 가진 용어임을 알고 사용하는지 모르겠다.
국민은 진정으로 정치의 교체를 원한다. 그러나 그런 구호보다 반 전 총장에게 먼저 듣고 싶었던 것은 미증유의 외교안보 위기에 빠져 있는 대한민국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에 대한 비전이었다. 아무리 귀국 첫날이었다고 해도 “북한 핵문제를 비롯해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국과의 관계를 더욱 더 공고히 해서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원론적인 수사는 세계 최고위 외교관인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사람에게 기대했던 말은 아니다. 반 전 총장은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문제에 대해서도 “완벽한 합의는 우리 위안부 할머니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는 두루뭉술한 말에 그쳤다. 초미의 관심인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에 대해선 금명간 입장을 밝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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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전 총장은 기성 정치권에 대한 비판과 구국의 각오를 다지며 누가 봐도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면서도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선 “다음에 말씀드리겠다”거나 “결정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며 빠져나갔다. 대선에 출마하려면 외교관의 화법을 벗고 정치인답게 혼신을 걸고 언론의 검증과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