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란테 임페라토, ‘호기심의 캐비닛’.
수집품을 모아둘 비밀스러운 사적 장소도 필요했지요. 이탈리아 스투디올로가 대표적입니다. 권력가들은 ‘작은 서재’라 불리던 이곳에 진귀한 도서와 값진 소장품을 함께 전시했습니다. 한편 다른 유럽 국가에도 비슷한 성격의 공간이 출현했습니다. 독일에는 ‘경이의 방’을 뜻하는 분더카머가 있었고, 영국과 프랑스에는 수집과 전시 공간인 ‘호기심의 캐비닛’이 존재했어요.
당시 수집 공간은 페란테 임페라토의 저서 ‘자연사’ 속 삽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벽면 서가에서 천장의 박제 악어까지 진열품 면면이 다채롭기도 합니다. 얼핏 무질서해 보이는 수집품들 유형은 크게 둘로 구분됩니다. 하나는 자연에서 모은 소장품들이었어요. 조개껍데기와 화석, 동물 뼈와 원석, 식물과 열매 등이 여기 해당했지요. 다른 하나는 인간이 만든 것들이었어요. 광학도구와 망원경, 동전과 무기, 악기와 미술품 등이 바로 그것이지요. 판화 속 공간이 오늘날 박물관, 도서관, 미술관, 동물원, 수족관, 기념관의 초기적 형태로 언급되는 이유입니다.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새롭게 경험했던 기이함과 형편에 넘치게 받았던 대접, 미지의 영역에 남겨 둔 문제와 양심의 제어를 벗어났던 부끄러움 등. 올 한 해를 채웠던 특별했던 순간들과 특이했던 사건들로 내 마음속에 경이의 방을 지어 보려 합니다. 나만의 가상공간은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없을 것입니다. 또 그 안의 수집품들은 판화에서처럼 호사스럽지도 않겠지요. 그럼에도 이런 시도가 내년에도 계속될 내 삶의 열정을 일깨우는 데 도움을 주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판화 속 호기심의 공간이 당대인들의 앎의 의지를 되살렸던 것처럼 말입니다.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