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억 원 넘는 임원 연봉, 주 40시간 근무 ‘신의 직장’ 10년 새 재정지원금 천정부지로 치솟아
버스 준공영제 도입 이후 버스업체의 경영은 한결 안정됐지만 버스 이용 시 시민이 느끼는 불안은 여전하다. 사진은 시내버스가 중앙버스전용차로로 급진입하는 모습. [동아일보]
과다 산정된 표준운송원가버스 준공영제의 가장 큰 효과는 그동안 만성 적자에 허덕이던 버스업체가 시의 재정지원으로 한결 안정적으로 회사를 운영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그 덕분에 버스운전기사의 처우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주 5일 근무에 법정 노동시간인 주 40시간을 준수하고 있으며, 연봉도 서울 시내버스 기준 평균 4700만 원을 웃돈다. 이 때문에 운수업 종사자 사이에서 최고 직장은 바로 서울 시내버스업체다.
하지만 버스 준공영제의 그림자도 짙다. 서울시가 운행비용 정산의 기준이 되는 표준운송원가를 필요 이상으로 높게 산정해 시민이 낸 세금이 과도하게 집행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 표준운송원가를 산정하려면 먼저 버스 대당 들어가는 총 운송비용이 얼마인지를 계산해야 한다. 총 운송비용은 크게 가동비와 보유비로 나뉘는데, 가동비는 운행되는 경우에 한해 지급되는 금액으로 연료비, 타이어비, 운전직 인건비가 여기에 속한다. 보유비는 서울시에서 인가한 차량 대수를 기준으로 버스업체가 실제로 보유한 차량에 지급되는 금액으로 임원·정비직·관리직 인건비, 정비비, 차고지비, 차량보험료, 차량 감가상각비, 기타 관리비, 기타 차량 유지비, 기본이윤, 성과이윤(인센티브) 등으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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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 서울시 산하 서울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4년 이후 물가상승률을 연 3%라고 가정했을 때 2014년 표준운송원가는 59만3569원이 적당하다. 결국 시가 실제 필요한 금액보다 10만 원 이상을 버스업체에 더 투입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서울시의 표준운송원가는 다른 시도에 비해서도 훨씬 높다. 2014년 기준 대전 56만3509원, 대구 57만1491원, 광주 60만7676원, 부산 65만6896원, 인천 46만2633원에 불과하다. 현재 서울시가 버스업체에 지급하는 재정지원금은 매년 2000억 원에서 많게는 3000억 원에 달한다. 2004년 816억 원으로 시작한 재정지원금이 2009년에는 2900억 원을 넘어섰고 2014년에는 2548억 원을 기록했다.
심지어 부풀려진 표준운송원가로 일부 버스업체가 방만한 경영을 일삼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현재 서울시 인가를 받은 66개 버스업체 가운데 65곳이 운송 수지 적자를 보고 있는 가운데, 임원 전원이 억대 연봉을 받는 업체가 8곳에 이르는 등 도덕적 해이 논란이 일고 있다. S운수회사의 경우 3년 연속 100억 원대 적자를 보고 있음에도 이 회사 사장은 최근까지 5억5000만 원에 달하는 고액 연봉을 받았다.
버스 준공영제 실시 이후에도 시내버스 난폭운전이 근절되지 않는 데 대해 운전기사들은 ‘휴식 시간 부족, 빠듯한 배차 시간’ 등을 근본 원인으로 꼽는다. [뉴스1]
솜방망이 임원 연봉 가이드라인김용석 서울시의회 의원(도봉1·더불어민주당)을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기준 버스업체 임원의 연봉이 5억 원 이상인 업체는 2곳이며, 이 가운데 대표이사가 2명인 한 업체는 1명이 5억 원대, 나머지 1명이 4억 원대 연봉을 받고 그 외 임원인 감사, 이사 역시 4억 원대 연봉을 챙겼다. 66개 버스업체 가운데 임원 연봉이 3억 원대는 총 3곳이며, 2억 원대는 12개 업체 총 14명, 1억 원대 연봉은 55명에 달했다. 결국 국민 혈세로 버스업체의 적자를 메우는 것은 물론, 임원의 고액 연봉까지 챙겨주고 있는 셈이다. 2004년부터 올해 11월까지 버스 준공영제에 투입된 재정지원금은 총 2조7359억 원이다.
올해 초 김용석 서울시의원은 고액 연봉 논란을 빚어온 서울 시내버스업체 임원의 인건비 한도액을 서울시가 권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시내버스 재정지원 및 안전 운행기준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발의해 통과시켰다. 이 조례안은 서울시장이 사업자별 경영 상태에 따라 임원 인건비의 연간 한도액을 권고할 수 있으며, 사업자가 이를 준수하는지 여부를 경영 및 서비스 평가에 반영할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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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관계자는 “올해 초 조례가 개정되긴 했지만 인사권과 경영권은 버스업체에 있는 만큼 이들이 시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얼마나 따를지 장담할 수 없다”고 밝혔다. S운송업체 역시 “임원 연봉과 관련한 논의는 이뤄진 바 없다”며 임원들의 연봉 역시 밝히기를 꺼렸다.
그렇다면 버스 준공영제 시행 이후 버스를 이용하는 시민은 얼마나 늘었을까. 시가 상당한 규모의 재정을 쏟아부으며 서비스 개선에 나선 것에 비해 버스의 수송분담률(이용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버스 준공영제를 시행하기 전인 2002년 버스 수송분담률은 26%이고 2010년 28.1%, 2013년 27.1%로 지난 10년간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기준 서울시 대중교통 수송분담률은 지하철이 38.8%로 가장 높고, 버스 27.1%, 승용차 22.9% 순이다. 이는 버스 준공영제 시행 이후 버스업체의 운영 안전성은 확보됐지만 버스 이용의 한계는 여전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버스 준공영제를 시행한 지 12년이 지난 지금도 버스 이용에 불편을 호소하는 이가 많다. 대표적으로 버스운전기사의 난폭운전 등을 들 수 있다. 이는 버스 준공영제의 당초 목적인 대중교통 이용 편의 증진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최근 3년간 서울시에 접수된 버스 이용 불편 신고 사례를 살펴보면 ‘승하차 전 출발 및 무정차 통과’ 신고 건수는 2014년 6715건, 2015년 6028건, 올해 11월 말 현재 5002건에 달한다. 또한 버스운전기사의 불친절함을 호소한 사례는 2014년 2801건, 2015년 2397건, 올해 11월 말 2153건에 달하고, 난폭운전도 2014년 1339건, 2015년 992건, 올해 11월 말 970건을 기록한다. 그 밖에도 운행시간 미준수 및 임의 운행, 정류소 외 승하차, 안내방송 미실시 등으로 불편함을 느꼈다는 승객이 적잖다. 이 가운데 시민에게 가장 민감하게 와 닿는 것이 생명과 직결되는 ‘안전’이다. 하지만 10월 서울시가 실시한 ‘시내버스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쾌적성·편리성·안전성·신뢰성 4개 항목 중 안전성이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서울 신림동에서 광화문까지 버스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김모 씨는 “아침마다 운전기사의 난폭운전에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다. 젊은 사람은 그렇다 쳐도 노인 중에는 버스가 출발하기 전 미처 손잡이를 잡지 못해 중심을 잃고 바닥에 주저앉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제발 급정거, 급출발 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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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버스 준공영제에 들어가는 시 재정이 상당하지만 과거와 비교해 버스 수송분담률은 큰 차이가 없다. [뉴스1]
바뀌지 않는 불친절, 곡예운전 버스의 난폭주행이 괴롭기는 일반 운전자도 마찬가지다. 특히 중앙버스전용차로제 도입 이후 곡예운전을 하는 버스들 때문에 운전하기 더 힘들어졌다고 호소하는 이가 많다. 중앙버스전용차로제 도입 이후 버스의 통행 속도는 한결 빨라졌지만, 시행 초기부터 대두된 교통 정체와 안전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중앙버스전용차로가 중간에서 단절된 구간의 경우 빠른 속도로 달리던 버스가 급하게 일반차로로 끼어들거나, 반대로 일반차로에서 중앙차로로 진입할 때 막무가내로 2·3차선을 한번에 가로지르는 버스들이 있어 위험천만한 상황이 수시로 연출된다. 심지어 중앙버스전용차로가 밀린다 싶으면 아예 일반차로로 나오는 등 도로 위를 마음대로 들락날락하는 버스운전기사도 있다. 또 버스 여러 대가 군집 운행을 하면서 뒤에 있는 차를 가로막고 자신의 버스 앞으로 여러 대를 끼어주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행태는 교통체증은 물론이고 버스 승객의 안전까지 위협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5년 한 해 동안 발생한 시내버스 교통사고율은 19.4%로 일반 승용차 교통사고율 4.6%의 4배가 넘는다. 더욱이 버스에는 안전벨트가 없고, 입석으로 가는 경우가 많아 위험성이 더 크다.
결국 서울시는 11월부터 버스운전기사의 난폭운전에 대한 페널티를 한층 강화했다. 난폭운전 관련 접수가 전체 버스 대수의 10%를 넘을 경우 운수업체에 과징금 120만 원을 물리거나 경우에 따라 영업 정지도 불사하기로 한 것.
하지만 이에 대해 버스운전기사들은 노사 갈등을 유발하는 징벌적 정책일 뿐 현실적 대안은 되지 못한다고 반발한다. 난폭운전의 근본 원인은 휴식 시간 부족, 빠듯한 배차시간 등 회사 운영상의 불합리함 때문이라는 것이다. 서울시버스노동조합 한 관계자는 “버스 준공영제 실시 이후 운전기사 처우가 많이 좋아진 건 사실이지만, 차량 정체가 심한 출퇴근시간에는 여전히 배차시간 때문에 화장실 한 번 다녀오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거칠게 운전하는 운전기사가 생기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이어 그는 “배차시간을 늘리면 버스 이용객의 불편이 증가하기 때문에 증차가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지만, 회사에서는 비용 문제로 증차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답답해했다. 경제적 효율성과 시민의 편의성 사이에서 서울시, 버스업체, 운전기사의 합리적 조율이 시급하다.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