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경주에서 발견된 신라 얼굴무늬수막새.
2년 뒤 학술지와 조선총독부 기관지 등에 이 와당이 소개되었다. ‘여자의 웃는 얼굴을 조각한 회백색 기와…신라 와당 중에서도 아직 볼 수 없는 희귀하고 섬세한 문양이 특히 이색적’이라는 내용이었다. 그건 얼굴무늬수막새(7세기경)였다. 지금 우리가 ‘신라의 미소’라고 부르는 바로 그 와당.
1940년 다나카는 일본으로 돌아갔다. 얼굴무늬수막새도 함께 가져갔다. 하나밖에 없는, 멋진 수막새가 고향땅을 떠난 것이다. 이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1964년, 이 와당을 기억해낸 사람이 있었다. 박일훈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장이었다. 그는 조선총독부 기관지에 이 와당을 소개했던 오사카 긴타로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와당의 소재를 찾았다. 오랜 수소문 끝에 다나카가 일본 기타큐슈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얼굴무늬수막새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얼굴무늬수막새는 볼수록 매력적이다. 살구씨처럼 생긴 시원한 눈매, 약간 큼지막한 콧대, 수줍은 듯 해맑게 미소 짓는 입…. 그 미소는 쑥스러운 듯하면서도 살짝 관능적이다. 수막새는 목조건축 지붕의 기왓골 끝에 쓰던 마감 기와다. 한번 상상해 보라. 건물의 지붕 처마에 죽 돌아가며 여인의 미소로 장식을 했다니. 낭만과 파격이 아닐 수 없다.
1930년대 천년고도 경주에서 우리는 그렇게 신라 여인의 미소를 만났다. 일본인 의사 다나카가 당시 근무했던 경주의 야마구치 의원 건물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경주경찰서 맞은편에 위치한 화랑수련원이 그 건물이다. 이곳 어딘가에 얼굴무늬수막새와 다나카의 흔적을 남겨두어야 하지 않을까.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