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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김상근]제우스는 하야하라

입력 | 2016-11-17 03:00:00

신들의 왕 제우스, 독재자 아버지 때문에 고아로 성장
제왕적 권력 가졌지만 지적 판단 능력 부족해… ‘변장’ 추태 부리다 왕의 위엄 잃어버려




김상근 객원논설위원 연세대 신과대 교수

 제우스는 신들의 왕이었다. ‘올림포스 12신’ 중에서 단연코 으뜸이었다. 하늘의 신이었고, 동시에 천둥번개의 신이기도 했다. 그가 번개를 쥔 손을 치켜들면 푸른 하늘은 노랗게 질려 숨을 죽였고, 그가 내리친 번개는 세상을 능히 불태우고도 남음이 있었다. 제왕적 권력을 손에 쥐고 있었던 제우스는 늘 오른손에 번개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그가 휘둘렀던 정치권력은 무소불위(無所不爲)에 가까웠다.

 그러나 제우스의 어린 시절은 불행으로 시작되었다. 아버지 크로노스는 잔혹한 폭군이었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의 고통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자기 자식들이 권력을 찬탈할 것을 염려해 아들딸까지도 잡아먹던 무서운 독재자였다. 크레타 섬에서 태어난 제우스는 이다 산 동굴에서 몰래 키워졌다. 아버지 크로노스의 무자비한 폭력을 피해 외딴섬에서 고립되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것이다.

 버림받은 아기 제우스를 아말테아라는 암염소가 키워 주었다. 어느 누구도 아말테아의 정체에 대해서 확신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아말테아가 암염소였다고 믿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암염소 떼를 몰고 다니는 어떤 주술적인 ‘무당’과 같은 존재라고도 한다. 천애의 고아가 된 아기 제우스를 자신의 젖으로 키웠든, ‘우주의 기운’으로 키웠든, 어쨌든 정체불명의 샤머니즘과 연관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아말테아가 제우스를 키운 것은 분명하다.

 장성한 제우스는 거의 편집증적인 여성 편력을 드러냈다. 아내 헤라가 도끼눈을 뜨고 쫓아다녔지만 제우스는 늘 아내의 감시에서 벗어나 온갖 추문을 저질렀다. 온갖 부정이 저질러졌고 수많은 사생아들이 태어났지만 문제는 터지지 않았다. 사건이 터지면 세상이 모르게 그것을 수습하는 유능한 신하와 내시들을 많이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우스는 많은 별명을 가진 신으로도 유명하다. 그중의 대표적인 별명이 ‘아이기스의 수호자(Zeus Aegiochos)’이다. 아이기스는 고르곤 자매의 머리가 장식되어 있는 ‘염소 가죽 방패’를 뜻한다. 염소 가죽으로 만든 방패를 보호했다는 것은 대체 무슨 뜻일까? 부모 없이 고통 받던 시절, 자신을 극진히 돌보아 주었던 ‘무당’ 암염소 아말테아를 보호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이라 여겼던 것일까?

 제우스는 또 ‘시장의 수호자(Zeus Agoraeus)’라고도 불렸다. 시장(Agora)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를 벌하는 신이란 뜻이다. 시장의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상인들을 가두어 놓고 돈을 뜯어내기도 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아직 사실로 확인된 바는 없다. 기대되는 반대급부가 있었던지 그 상인들도 입을 굳게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

 제우스는 모든 권력을 손에 쥐었고 벼락을 던져 산 사람을 통째로 태워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지적 능력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그는 지나가는 사슴(鹿)을 보고도 말(馬)이라고 우기기도 했다. 그럼 제우스 왕궁의 내각과 비서들은 한목소리로 주청을 올렸다. “폐하, 당연하옵니다. 저것은 사슴이 아니라 말이옵니다. 지금부터 저 사슴을 말이라 부르시옵소서!”

 제우스는 또 올림포스 12신의 역사를 다시 쓰라는 명령을 내렸다. 폭군이었던 자기 아버지 크로노스를 자비로운 국부로 만들라는 지시였다. 수많은 역사학자들은 학자의 양심과 학문의 정신을 더럽히며, 제우스의 명령에 따라 크로노스를 올림포스의 국부로 치켜세우는 역사책을 집필했다는 믿지 못할 얘기가 전해진다. 

 어느 날 제우스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문득 내려다본 육지에서 아름다운 여성 유로파가 소 떼와 함께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유로파를 유혹하기 위해 황소로 변장하는 추태를 부리며 그녀에게 접근했다. 로마의 문필가 오비디우스는 그 한심했던 꼬락서니를 이렇게 묘사한다. 제우스는 “왕홀(王笏)의 위엄을 버리고, 황소의 모습으로 변하더니, 소 떼와 섞여 음매∼ 하고 울부짖었다”(천병희 역).

 세상 사람들은 제우스가 왕이길 바랐으나 사람들의 눈에 비친 제우스의 모습은 ‘왕홀의 위엄’을 버린 채 소 떼와 어울리는 한 마리 황소였을 뿐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함께 모여 아래와 같은 함성을 질렀으니, 100만이 함께했던 그 포효(咆哮)는 북악산 기슭까지 메아리쳤다고 한다.

 “제우스는 하야하라! 이게 나라냐!”

김상근 객원논설위원 연세대 신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