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예산 장난뒤엔 고장난 예결산시스템
호송차에서 내리는 최순실-안종범 대기업으로부터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출연금을 강제 모금하는 데 공모한 혐의로 구속된 최순실 씨(왼쪽)와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이 7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한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7일 정부와 정치권에 따르면 올해 최 씨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예산은 한류 사업,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창조경제 예산 등 5200억 원에 이른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7일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순실 씨의 측근인 차은택(전 문화창조융합본부장)에게 엄청난 예산을 퍼주었던 것이 지금 큰 스캔들이 됐다”며 “미국에서는 예산당국이 정치적 영향에 따라 예산을 지원하면 큰 문제가 되는데 국내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 전 장관은 7일 저녁 국민대 행정대학원 ‘공공책임과 윤리’ 수업 시간에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알려진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 사태에서 공무원의 윤리의식에 날 선 비판을 가했다.
지난 2년간 ‘최순실표 예산’이 별다른 저항 없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었던 데는 국회의 ‘날림 심의’도 한몫했다. 국회의 예산 심의에 주어진 시간은 40일 남짓에 불과한데,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지역구 예산을 따내는 데만 골몰하기 때문이다. 설령 상임위 논의 과정에서 사업 예산에 문제가 제기되더라도 주무 부처가 적극 방어에 나서면 원안대로 통과되기 일쑤다. 2014년 당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도 각종 문화융성 사업의 비효율성이 도마에 올랐지만 문화체육관광부의 적극적인 변호에 힘입어 원안대로 통과됐다.
이번 사태를 통해 결산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도 여실히 드러났다. 지금의 예산 및 결산 시스템은 결산에서 지적된 사안들을 다음 해 예산 편성에서 걸러내기 어려운 구조다. 직전 연도 결산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시점과 다음 연도 예산안이 확정되는 시점이 너무 붙어 있는 탓에 예산 편성이 결산과 무관하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회 결산 과정에서 나오는 지적은 강제성이 없어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4년 결산 과정에서 시정요구를 받았던 1812건 중 200건은 2012년, 2013년 결산 당시 같거나 비슷한 내용으로 시정요구를 받았던 사항이다.
세종=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이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