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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추천 총리에 내치 전권만 주면 돼”… 민주당 숨고르기

입력 | 2016-11-08 03:00:00

[혼돈의 정국]셈법 복잡한 野
우상호 “수용땐 정권퇴진운동 안해”
하야 주장한 안철수 견제 의도도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결단을” 신중




 더불어민주당이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한 ‘하야 정국’에서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민주당은 특검과 국정조사 수용, 김병준 총리 후보자 지명 철회와 국회가 추천한 총리 임명, 박 대통령 2선 후퇴 등 기존 요구 조건을 유지하면서도 장기전에 대비한 전략을 짜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7일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에서 “박 대통령은 폭주 개각을 철회하고 국회 추천 총리를 수용해 정국을 수습해야 한다”며 “끝까지 외면하면 불행히도 정권퇴진 운동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박 대통령을 겨냥한 압박의 강도를 올리는 듯했다. 그러나 우상호 원내대표는 최고위 회의 직후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박 대통령이 김병준 총리 후보자 지명을 철회하고, 국회에서 추천한 총리 후보자를 지명한 뒤 전권을 주면 된다”며 “이것 하나만 받아주면 정권퇴진 운동은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총리가 외국 나가면 누가 만나 주나. 그 부분은 대통령이 하고 내정은 총리가 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상 외교의 의전 부분은 박 대통령이 맡아 이어가되, 그 외 내치에 대해선 국회가 추천한 총리에게 전권을 주자는 것이다. 이날 비공개 회의 직전까지 ‘하야’를 언급하며 정권퇴진 운동 돌입의 고삐를 바짝 죄던 것과는 온도차를 드러낸 것이다.

 그 대신 우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여야가 후임 총리를 논의할 때 어떻게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추미애 대표가 같이 앉을 수 있겠느냐”며 새누리당 이 대표 등 지도부 퇴진을 요구했다. 타깃을 박 대통령이 아닌 박 대통령을 떠받치는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 진영으로 수정한 셈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목표는 박 대통령의 2선 후퇴겠지만 박 대통령의 ‘정면돌파’ 의지가 만만치 않은 만큼 ‘탄핵 트랩(함정)’을 회피하며 친박 지도부라는 1차 저지선을 무너뜨리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해찬 의원도 이날 최고위에서 “1년 4개월 동안 대통령이 직접 나가야 하는 정상회담이 6개 이상 될 텐데 외교적으로 큰 문제”라고 밝힌 것도 ‘숨고르기’의 연장선상이다. 이날 최고위에 당 외교안보통일 국정자문회의 의장 자격으로 참석한 이 의원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아세안+3,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을 예로 들면서 “(이런 회의는) 총리가 가는 것이 의미가 없다”며 “대통령이 가야 하는 곳에 (총리 시절) 대신 갔더니 작은 나라만 상대해주지 큰 나라는 총리급이라고 만나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외교 권한까지 총리에게 맡기자”고 주장하다가 하야로 돌아선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를 동시에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안 전 대표는 이날 서울 마포구 당사에서 “박 대통령은 내치에 필요한 신뢰는 물론이고 외교에 필요한 다른 나라 신뢰도 상실했다. 외교 공백도 더 지속되면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유력 대선 주자인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도 당 지도부와 호흡을 맞추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이날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장과 만나 정국 수습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이들은 문 전 대표가 야권 인사들 중 가장 ‘신중한 시각’을 갖고 있다며, 급진적 행동보다는 국정 안정을 우선시해 줄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남 전 장관은 모두발언에서 “국민감정으로는 바로 하야가 나와야 하는데, 그건 국민감정에는 맞지만 우리 정치에서는 조금 성급한 얘기”라고 말했다. 이어 “혁명적 사태를 혁명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부작용이 많다”며 “가급적 합법적 룰에 따라 풀어나가는, 비유적으로는 혁명적 사태를 반(反)혁명적으로 풀어나가는 게 순리가 아닌가 한다”고 주문했다. 루비콘 강을 무턱대고 건너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문 전 대표는 이 자리에서 “이제 박 대통령은 국민을 더 부끄럽게 하지 말아야 한다”며 “국민의 뜻을 존중해 국정 공백과 혼란을 하루빨리 끝낼 수 있는 결단을 스스로 내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주말 ‘중대한 결심’을 연이어 언급하며 안 전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처럼 ‘정권퇴진 운동’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을 때보다 발언 수위가 낮아진 것이다.

 민주당과 문 전 대표 측은 결국 현실성이 낮은 ‘대통령 즉각 퇴진’보다는 여론의 추이를 살피며 일단 차기 대선까지 남은 1년 4개월 동안 박 대통령 및 보수 기득권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지구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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