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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성의 오늘과 내일]빨간 바지를 솎아내라

입력 | 2016-11-01 03:00:00


황재성 경제부장

 사상 초유의 국정 스캔들의 장본인인 최순실 씨의 첫인상이 복부인(福婦人)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 언론에 공개된 사진 때문이었다. 사진 속 그녀는 빨간색 반팔 티에 하얀 바지, 하얀 모자에 흰 테 선글라스를 낀 채 의자에 걸터앉아 있었다. 1980년대 말 활개를 치던 복부인들은 주로 빨간 바지를 입고 부동산 시장을 누볐다. 이들은 대부분 고위층 부인으로, 남편들이 직위를 통해 얻은 토지 개발 정보를 이용해 도시 개발 예정지나 도로 건설 대상지를 사들인 뒤 단기간에 되파는 수법으로 막대한 시세차익을 챙겼다. 당시 언론은 이들을 ‘빨간 바지’라는 별칭으로 불렀다. 이후 한동안 붉은색은 복부인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실제로 최 씨는 국내외에서 300억 원대에 이르는 부동산을 보유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에는 서울 강남 알짜배기 땅에 위치한 건물도 있다. 강남 땅 투기가 절정이던 1980년대 중반 강남 요지의 땅을 사서 건물을 지어 파는 방식으로 재산을 불린 행적도 드러났다. 현 정부 출범 이후인 2013년 10월에는 국토교통부의 토지 개발 계획을 들여다본 정황도 나왔다. 이 때문에 부동산 업계에선 최 씨가 사전적인 의미의 복부인 그대로라는 말까지 나온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펴낸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 따르면 복부인은 부동산 투기를 하여 금전적으로 큰 이익을 꾀하는 가정부인을 의미한다.

 복부인으로 대변되는 부동산 투기세력은 1970년 강남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등장했다. 늘어나는 서울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당시 정부는 강남에 ‘8학군’을 조성하고 지하철 2호선을 배치하는 등 강력한 강남 개발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1970년부터 1999년까지 30년간 강북 인구가 430만 명에서 520만 명으로 늘어날 동안 강남 인구는 120만 명에서 4.2배인 510만 명으로 증가하는 등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이에 따라 토지 가격이 1년 새 10배 이상 뛰고 아파트값이 폭등하면서 집중적인 투기 대상이 됐다. 역대 정권에서 부동산 시장 과열이 문제로 부각될 때마다 강남이 ‘0’순위 타깃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복부인으로 시작했던 부동산 투기세력은 김대중 정부가 외환위기로 침체된 내수 시장을 살리기 위해 1998년 분양권 전매 규제를 전격적으로 해제하면서 기업형 전문화의 길을 걷는다. 당시 등장한 게 이동식 중개업소, 즉 ‘떴다방’이었다. 이들은 1990년 후반까지만 해도 분양계약서를 사들인 뒤 프리미엄을 얹어 파는 방식으로 이익을 챙겼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부동산개발 시행사 등과 결탁해 아파트 청약률을 끌어올리거나 분양권 가격을 끌어올리며 투기 바람을 주도했다.

 최근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으로 가계부채 문제가 지목되면서 부동산 시장 안정이 화두로 떠올랐다. 정부는 ‘선별적, 단계적 대응’ 방침을 선언하고, 강남 재건축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현재 예상되는 방안은 분양권 전매 제한 강화나 청약 1순위 취득 요건 강화, 재당첨 금지 등이 유력하다.

 다만 최근 부동산 시장 과열을 이끄는 세력 속에 복부인과 떴다방과 같은 투기세력 외에 실수요자들도 섞여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고민이 깊다. 이들은 대부분 저금리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소액 투자자들이다. 내년 이후 건설 경기가 냉각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잇따르는 점도 부담이다.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대 후반을 기록할 수 있었던 데에는 건설 경기가 큰 몫을 차지했다. 게다가 내년 경제 전망은 올해보다 더 좋지 않다. 정부가 빨간 바지와 떴다방은 솎아내고 경기 침체는 막는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하길 기대해 본다.

황재성 경제부장 jsonh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