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백자 달항아리. 화가 김환기는 1950년대 초 달항아리라는 멋진 이름을 붙였다. 문화재청 제공
일본 유학을 마치고 1937년 귀국한 김환기는 1940년대 들어 백자에 빠져들었다. 1944년 서울에서 잠시 종로화랑을 경영하면서 골동상과 백자를 만났고 이후 수시로 백자를 사들였다. 그의 에세이 ‘항아리’의 한 대목. “한때는 항아리 속에서 산 적이 있다. 온통 집안 구석구석에 항아리가 안 놓여진 구석이 없었으니 우리 집을 일러 항아리집이라 부른 사람도 있었던 것 같다… (골동품 가게에) 들르면 으레 한두 개 점을 찍고 나오게 됐으니 흡사 내 항아리 취미는 아편중독에 지지 않았다.”
1940, 50년대 김환기는 부지런히 백자를 수집하고 백자 그림을 그렸다. 김환기의 그림을 보면 백자가 달인 듯하고 달이 백자인 듯하다. 백자와 달의 구분이 무의미하다. 김환기에 의해 백자와 달이 만난 것이다. 1950년대 서울에서 ‘구하산방’ 골동가게를 운영했던 홍기대는 이렇게 증언한다. “6·25전쟁이 끝난 1953년 무렵, 김환기는 커다랗고 둥근 백자대호를 백자 달항아리로 이름 붙였다. 달항아리로 부른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
지금도 백자대호, 백자원호라고 부른다면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좋아하진 않을 것이다. 우리가 크고 둥근 조선 백자를 좋아하는 데는 달항아리라는 이름이 절대적이었다. 피폐하고 음울했던 1950년대 초, 우리는 김환기와 함께 달항아리를 만났다. 근대의 또 다른 풍경. 두고두고 행복한 일이다.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