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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소리 안듣고 잠드니 너무 행복”

입력 | 2016-10-19 03:00:00

시리아 내전에 부모 잃은 15세 소년, 또래 중학생들에 국내 첫 난민교육




올해 1월 시리아에서 탈출해 한국에서 난민 신청을 한 라바니에 무함마드 라미 군(앞)이 자신이 다니는 서울 동작구 영등포중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직접 난민 교육을 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18일 아침 시리아 난민 라바니에 무함마드 라미 군(15)은 몇 년 전 하늘나라로 떠난 부모 사진을 보며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서울 동작구의 난민 숙소 ‘라이트하우스’를 나서는 발걸음도 가벼웠다.

 2011년 3월 내전 발발 이후 30만여 명이 사망한 시리아에서 올해 초 강제 징집을 피해 탈출한 라미 군은 지난달 서울 동작구 영등포중학교 1학년에 입학했다. 그리고 이날 난민지원단체 ‘피난처’와 ‘세이브더칠드런’이 학령기 난민의 한국 정착을 돕기 위해 마련한 난민교육 프로그램에 자원했다. 난민 학생이 직접 또래 학생에게 난민 교육을 한 건 처음이다. 라미 군이 아랍어와 서툰 한국어로 발표한 내용은 그의 어투로, 같은 반 친구 20명이 써 준 쪽지는 편지 형식으로 전한다.

○ 라미 이야기

 안녕하세요, 시리아에서 온 라바니에 라미입니다. 이 학교에 갑자기 생김새가 다른 제가 나타나서 놀랐죠? 오늘은 제가 어떻게 한국으로 오게 됐는지 얘기하고 싶어요. 제가 살았던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는 활기가 넘치고 아름다운 유적이 가득한 도시였어요. 그런데 5년 전 어느 날 정부군(시아파)과 반군(수니파)이 전쟁을 시작하면서 검은 연기와 총소리가 마을을 뒤덮었어요. 이듬해 어머니가 시장에 다녀오다가 총에 맞아 돌아가셨어요. 얼마 후엔 아버지마저 폭탄 테러에 휘말려서 그만…. 저는 그때부터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했어요. 강제 징집돼 전쟁터로 내몰릴 일만 남은, 어둡고 고통스러운 시절이었죠.

 올해 1월 기적이 일어났어요. 한국에서 결혼해 가정을 꾸린 친형이 시리아 탈출을 도울 브로커를 고용해 저를 한국으로 데려오기로 한 거예요. 택시에 숨어 전쟁터로 변한 시리아와 레바논의 국경을 지날 때의 긴장감을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간신히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난민 신청을 한 뒤 지금은 법무부의 심사를 기다리며 학교에 다니게 됐어요.

 제가 가진 물건 중 가장 소중한 건 지금 제가 입고 있는 교복이에요. 조끼와 넥타이가 멋있어요. 시리아에서 다니던 초등학교는 폭격에 무너졌고, 병사들이 어린아이를 납치해 몸값을 요구하는 일이 잦아 중학교 입학은 꿈도 못 꿨거든요. 한국어를 잘 알아듣진 못하지만 도덕 시간이 제일 좋아요. 장래 희망은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나오는 송중기 같은 배우가 되는 거예요. 어머니의 꿈도 배우였거든요. 기회가 된다면 연극 수업을 듣고 싶어요.

 저는 난민 심사에서 떨어지면 다시 시리아로 돌아가야 해요. 그 전까진 최대한 많은 친구와 친해지고 한국어도 배우고 싶어요. 폭탄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에서 잠들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해요.

○ 한국 친구의 답장

 안녕 라미야, 너와 같은 반인 ○○이야. 평소 네가 말수가 적어서 수줍은 성격인 줄 알았는데 아랍어가 이렇게 유창한 줄 몰랐어. 그동안 차마 물어보지 못했던 너의 아픈 과거를 듣고 울컥했어. 많이 힘들었을 텐데 잘 버텼구나. 외국인 전학생이 온다고 했을 때 조금 거부감이 있었는데 너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됐어. 아, 그리고 너는 할랄음식만 먹어서 학교 급식을 잘 못 먹는다고 했지? 햄을 뺀 김밥을 싸 올 테니 같이 먹자. 앞으로 함께 좋은 추억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어. 동전 튕기기를 잘하는 것 같던데 나도 가르쳐주라. 내일부터 복도에서 마주치면 꼭 인사하자!

○ 18명 중 1명꼴로 난민 인정


 법무부는 이르면 올해 안으로 라미 군의 난민 인정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지만 결과는 불투명하다. 1994년부터 올해 8월까지 심사가 종료된 1만476명 중 601명(5.7%)만 난민으로 인정됐다. 판정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2년 6개월. 이 기간에 대다수 난민 어린이와 청소년은 교육 사각지대에 방치된다. ‘피난처’ 관계자는 “난민 어린이들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의무교육 대상이지만 일선 학교가 입학에 난색을 보이는 사례가 잦다”며 “정부가 학령기 난민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