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 신작 연극 ‘산허구리’ 월북 작가 함세덕의 작품 초연 결말에 새 해석 가미 반전미 더해
국립극단 신작 ‘산허구리’의 한 장면. 오목하게 들어간 해안가의 산동네를 뜻하는 산허구리를 배경으로 바다에서 살고 죽어가는 어민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국립극단 제공
연극 ‘산허구리’는 월북 작가 함세덕의 초기작이다. 월북 작가란 한계 탓에 그동안 제대로 공연조차 되지 못한 그의 작품이 국립극단 무대에 올랐다. 연출을 맡은 고선웅은 원작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았지만, 극의 결말에 새로운 해석을 더해 반전미를 준다.
산허구리는 바다를 품에 끼고 살아가는 한 가난한 어민 가족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큰아들 복조가 바다에서 불의의 사고로 숨지면서 평화롭던 가정에 ‘불행’이 찾아온다. 주요 인물은 아들을 잃고 정신이 나간 상태로 지내는 어머니, 상어에게 물려 외다리가 된 것도 모자라 아들까지 바다에 빼앗긴 아버지, 조개를 팔아 가난한 살림에 보태는 막내아들 석이와 딸 복실이 등이다.
연출가 고선웅의 힘은 사실 마지막 장면에서 빛을 발한다. 러닝타임 가운데 마지막 5∼10분에 그의 역량이 집중된 모양새다. 어머니와 막내 석이에게만 보이는 죽은 복조가 짚으로 엮은 배 위에 올라 죽은 이들과 함께 ‘어기야디야’를 외치며 배를 모는 모습에서 슬픔과 한이 폭발하듯 터져 나온다. 배우들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특히 노어부의 처, 즉 복조 어머니 역할을 맡은 배우 김용선의 연기가 일품이다. 진이 다 빠진 듯 미친 사람 같다가도 아들에 대한 믿음을 분출하는 연기에선 강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31일까지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3만 원. 1644-2003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