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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광해의 역사속 한식]문어

입력 | 2016-10-05 03:00:00


황광해 음식평론가

 문제는 ‘문어 두 마리’였다. 세종 14년(1432년) 6월, 강원도 고성 수령 최치의 미곡 횡령 사건으로 조정이 시끄럽다. 횡령과 뇌물 상납은 세트 메뉴다. 최치도 권문세가에 뇌물을 주었다. 여러 차례 조사를 거쳐 진상이 드러났다. 죄인들에 대한 처분만 남았다. 최치는 절차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 이 와중에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튄다. 최치의 자백 중에 “문어 두 마리를 대사헌 신개에게 주었다”는 내용이 나온 것이다. 신개는 “받지 않았다”고 주장.

 문어 두 마리가 대단한 뇌물은 아니다. 더 많이 받은 사람도 있었다. 문제는 받은 사람의 직책이다. 신개(1374∼1446)는 대사헌(종2품)이다. 지금의 감사원장쯤 된다. 하필이면 그 사이에 사면령도 있었다. 문어 두 마리보다 더한 죄도 사면 받았다. ‘신개의 문어 두 마리’ 쯤이야 슬쩍 지나가도 될 일이다.

 하지만 간단치 않았다. 세종은 “최치에게 뇌물 받은 자의 죄는 다 용서하겠다”고 하면서도 “신개의 일은 의심할 만하다. 보통 관원이라면 문제 삼을 것이 없겠지만 신개는 풍헌관(風憲官·대사헌)이다. 세상 여론이 어떻겠는가? 대사헌 직을 그만두게 할 것인가?”라고 묻는다. 조정의 의견은 나뉜다. 일부는 “명확한 증거는 없으나 신개가 남을 규찰하는 업무를 보고 있으니 업무를 바꾸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반대파도 있다. 이미 대사헌, 홍문관 대제학을 거친 맹사성(1360∼1438) 등이다. “증거도 확실치 않고, 본인이 극구 부인하고 있다. 요즘 고관 집 하인들이 주인 몰래 뇌물을 받는 경우가 잦다. 만약 사실이 아닌데 벼슬을 바꾼다면 지나치게 무거운 처분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때도 ‘배달사고’는 있었다. 세종은 맹사성 등의 의견을 따라 신개를 처벌하지 않는다(조선왕조실록). 신개는 이조판서를 거쳐 1445년 좌의정이 되었다. 신개가 죽었을 때 세종은 3일간 조회를 하지 않았을 정도로 그를 아꼈다. 문어 두 마리로 낙마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문어가 대단한 식재료는 아니다. 우리나라 전 해안에서 잡았다. 동해안 북부에서 나오는 것을 상품으로 쳤다. 세조 4년(1458년) 10월, 명나라에 보낸 신정 하례 예물은 ‘문어 400마리, 대구 600마리, 사슴 육포 560장 등’이다(조선왕조실록). 문어나 대구 모두 한반도에서 흔한 물건들이었다. 크기 때문에 가격은 제법 비쌌다. 정조 20년(1796년) 정리소가 보고한 내용을 보면 마리당 큰 문어가 1냥 6전, 광어가 6전, 말린 대구가 3전 5푼이다. 광어의 3배, 대구의 5배쯤 비싸다.

 우리는 일찍부터 문어를 먹었다. 고려시대 목은 이색(1328∼1396)은 경주의 반란을 수습한 장수가 현지에서 문어를 보내오자 “전쟁이 끝나고 생선을 보내오니, 이름도 ‘문(文)’”이라고 화답한다(목은시고). 문어(文魚)의 ‘문(文)’과 ‘무(武)’를 대비시킨 것이다.

 문어는 ‘팔초어(八稍魚)’라고 불렀다. 다리가 8개이기 때문이다. 생물학적으로는 다리 8개에는 다리와 팔이 섞여 있다고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다리’라고 이른다. 문어는 크니 대팔초어, 낙지는 작으니 소팔초어다.

 우리와 달리 중국인들은 문어, 낙지, 꼴뚜기 등을 혼란스럽게 생각했다. 혼란의 이유는 중국 남과 북의 식재료가 딴판이기 때문이다. 북쪽 사람들은 다양한 생선을 먹지 않는다. 허균은 “문어는 동해에서 난다. 중국인들이 좋아한다”고 했다(성소부부고). 성호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엉뚱한 이야기를 한다. 임진왜란 당시 구원병을 이끌고 왔던 중국의 이여송(1549∼1598) 등이 문엇국(文魚羹)을 보더니 얼굴에 난처한 빛을 띠고 먹지 않더라는 것이다. 이여송은 요동성 철령위 출신이다. 자라면서 문어를 보지도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허균이 말한 ‘중국인’은 남쪽 지방 출신이다. 이여송과는 식성이 전혀 달랐을 것이다. 이익은 중국 문헌을 인용해 “문어는 절강성의 망조어”라고 했다. 이 글도 부분적으로 틀렸다.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팔초어는 속명 문어이며, 소팔초어는 낙지(絡只), 망조어(望潮魚)는 골독이(骨篤伊)’라고 못 박았다.
 
황광해 음식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