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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 금지약물]‘천재 도핑꾼’ 암스트롱, 결국 파멸의 길

입력 | 2016-10-01 03:00:00

<5·끝>도핑, 완전범죄는 없다




전 사이클 선수 랜스 암스트롱처럼 체계적으로 교묘하게 도핑을 하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아무도 모를것 같은 도핑도 결국은 밝혀지게 된다. ‘사이클 황제’로 추앙받던 그는 약물 복용 사실이 드러난 뒤 그간 쌓아올린 모든 업적을 내려놓아야 했다. 동아일보DB

 랜스 암스트롱(45·미국).

 고환암을 극복하고 1999∼2005년 ‘지옥의 레이스’라 불리는 도로 사이클 대회 투르 드 프랑스 7연패를 달성한 철인. 하지만 2012년 미국반도핑기구(USADA)가 상습 약물 복용을 이유로 1998년 이후 그가 받은 모든 상을 박탈하고 영구 자격 정지 징계를 내리면서 나락으로 추락했다.

 USADA는 2010년 10월 조사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암스트롱에 대해 “역사상 가장 치밀하고, 전문적이며, 성공적인 도핑을 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암스트롱은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꾸준히 투입했다. 도핑 검사에서 적발되지 않을 정도의 소량만 사용한 것. 주사를 맞는 기존 방식을 쓰면 원하는 만큼의 소량을 투입하기 어렵다는 점을 알고는 자신의 전담 의사를 통해 소량의 테스토스테론을 혀 밑에 넣어 녹이는 방법을 개발했다.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를 많이 만들어내는 에리트로포이에틴(EPO)을 주입하다가 이를 잡아내는 호르몬 적출법이 등장하자 그 다음에는 자신의 피를 뽑아 보관했다가 경기 직전 수혈하는 방법을 썼다. 일명 ‘혈액 도핑’이다. 이후 혈액 농도를 적발하는 방법이 나오자 혈액을 묽게 만들기 위해 식염수까지 맞았다.

 갖은 의학적, 과학적 방법을 동원한 덕분에 암스트롱의 시료에서는 아직까지도 금지 약물 사용이 적발되지 않았다. 하지만 USADA는 정황 증거로 그를 약물 복용자로 확신했다. “암스트롱이 약물 사용을 강요했다”는 전 소속팀 동료 11명의 구체적 증언이 결정적이었다. 이 밖에 예전 대회 혈액샘플 재검사 결과, 팀 닥터 등 약물 공급 담당자와 주고받은 금융결제 기록과 e메일도 증거로 제시됐다. 암스트롱의 전처 크리스틴 역시 1998년 대회 때 팀이 복용한 호르몬제를 증거물로 제공했다.

 암스트롱은 “20년이 넘는 사이클 인생 동안 500∼600번의 도핑 테스트를 받았지만 단 한 번도 양성 반응을 보인 적이 없었다”며 미국 텍사스 연방법원에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그의 소송을 기각했다. 완강히 혐의를 부인하던 암스트롱은 2013년 1월 한 TV 쇼에 출연해 “선수 시절 도핑을 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고백했다.

 역설적이게도 암스트롱 때문에 반도핑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했다. 예전엔 금지 약물 성분이 100ng(나노그램·1ng은 10억분의 1g) 이상 돼야 적발할 수 있었지만 요즘엔 1ng만 돼도 검출할 수 있다. 8년 전 베이징 올림픽과 4년 전 런던 올림픽 때 무사통과했던 메달리스트들이 최근 검사에서 적발돼 메달을 박탈당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국제반도핑기구(WADA)는 또 2002년부터 선수생체수첩(ABP)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WADA는 ABP 대상자를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혈액을 채취해 개개인의 약력을 완성하고, 매 대회 이를 이전 상태와 비교한다. 검사 결과가 일반적인 도핑 기준치 안에 있다 하더라도 개인 약력에 비춰 변화가 있다면 도핑을 의심하게 된다. 희대의 약물 사기꾼이었던 암스트롱도 일찌감치 ABP 대상자가 되었다면 도핑 사실이 보다 일찍 발각되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약물 사용 선수들의 설자리는 없다고 봐야 한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