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구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그 사물들이 갖고 있는 특징적인 동사에 관심이 많고 또 주목하곤 한다. 연필은 잡고 쥐고 쓰고 깎다, 부채는 펴다 접다 부치다, 앨범은 넣다 끼우다 보관하다, 라는 동사를 필요로 한다. 움직임을 나타내는 동사를 갖지 않는 사물은 거의 없지 않을까. 간혹 너무 작아서 눈에 띄지 않거나 쓸수록 크기가 줄어드는 것들이 있다. ‘지우다’라는 목차에 유일하게 수록된 문구, 지우개가 그렇다.
이번 학기 첫 창작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제목을 주고는 짧은 글쓰기 시간을 주었다. 즉흥적인 글쓰기에선 대개 그렇듯 학생들은 연필이나 샤프펜슬로 글을 썼는데, 쓴 글보다 연필로 죽죽 지운 흔적이 더 많은 한 학생의 이런 마지막 문장을 읽고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지우개를 가져오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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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지우다 같은 동사는 어떤 은유의 차원에서 그 뜻을 생각해 보고 싶기도 하다. 최근에 ‘주거해부도감’이라는 건축 책을 읽다가 한 채의 집을 짓기 위해서는 원하는 모든 점들을 얻고 싶더라도 그것을 위해서 먼저 어떤 것을 ‘버리지(cut) 않으면 안 된다’라는 대목에서 무릎을 친 적이 있다. 그것은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쓰고 싶은 것을 쓰되, 어떤 것을 컷 해야 하는지 알아차리고 그것을 지우는 일.
소설을 쓸 때 처음에는 연필로 쓰고 두 번째는 지우개로 쓴다고 말한 작가가 누구였나?
쓰고 싶은 이야기를 일단 끝까지 쓴다. 그 후 약간의 지우기가 필요하다. 틀린 글자를 지우고 지나친 기교와 과장을 지우고 진심이 담겨 있지 않은 부분을 지우고. 더 이상 지울 게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나는 그것이 글쓰기에 관한 가장 훌륭한 퇴고의 방법이라고 알고 있는데, 어쩌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어떤 글쓰기 책의 목차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문구점을 급습하라.’ 그러니까 글쓰기에 필요한 것은 종이와 연필과 지우개.
조경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