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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의 프리킥]대한민국 안보, 중대결단 필요하다

입력 | 2016-08-26 03:00:00


허문명 논설위원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핵전쟁 전략을 연구한 버나드 브로디 예일대 교수는 1945년 일본에 원자폭탄이 떨어지자 “내가 쓴 글들은 모두 무용지물이 됐다”며 “지금까지 군의 목적은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지는 걸) 피하는 것이 목적이 돼야 한다”고 했다.

북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쏘아 올린 2016년 8월 24일 이후 한반도 안보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대북(對北) 및 한미 안보전략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수밖에 없는 완전히 새로운 정세를 맞은 것이다.

6·25전쟁 패배 후 북한은 소련, 중국의 도움 없이 전쟁할 수 있는 독자 전략을 추진했다. 소련식 정규전과 중국 마오쩌둥의 유격전을 결합한 형태에서 1980년대 냉전 체제가 무너지고 한국과의 경제 격차가 벌어지자 대량살상무기 개발 등 비대칭 전략으로 돌아섰다. 화생방 무기,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핵무기 개발을 본격화한 건 이때부터다. 김일성이 1956년 30명의 핵물리학자를 소련 핵 연구소로 파견해 핵 개발에 착수한 이후 김정은 대(代)에 이르러 3대에 걸친 핵과 미사일 개발과 실전 배치는 거의 완성 단계에 왔다. 핵탄두 소형화, 다종화, 단거리 중거리 장거리 운반체와의 결합,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SLBM까지 핵전력의 라인업이 갖춰진 것이다.

우리 대북 전쟁전략 근간은 한미 연합군이다. 주한미군과 한미연합사 체제하에서 압도적인 재래식 무기로 북을 억제하고 북이 선제공격을 하면 미국에서 증원군이 파견됨과 동시에 휴전선을 돌파해 북을 점령한다는 억지, 방어, 반격전의 개념으로 구성돼 있다. ‘작전계획 5027’과 키 리졸브 훈련은 이것을 구체화한 것이다. 하지만 잠수함에서 쏘아 올리는 북핵이 미 본토까지 위협하는 상황에서 전략의 근간이 흔들리게 됐다. 북한이 동서남해로 잠입해 핵으로 선제공격을 하면 남한은 초전에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당할 수도 있다.

미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대선 후보가 한일 자체 핵무장과 주한미군 감축을 공언한 데 이어 21일 미 하원 맥 손베리 군사위원장이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를 통해 주한미군 감축을 주장했다.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미국의 대한(對韓) 안보 보장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세종연구소 이종석 연구위원 등이 이달 초 북-중 경계 지역을 답사하고 22일 낸 보고서에 따르면 북-중 무역은 유엔 제재 이전보다 더 활발하다고 한다.

우리 외교안보팀은 북의 핵 도발에 이렇다 할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북의 ‘칼(핵)’은 칼집에 들어있는 것만으로도 위협이다. 이제 SLBM까지 쥔 북이 여러 형태의 국지적 도발을 할 때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의 공언처럼 ‘원점 타격’과 ‘평양 최고지휘부 직접 공격’이 실제로 가능할지 의문이다. 북이 서울이 아니라도 인천항 앞바다에 핵미사일을 떨어뜨리며 항복을 강요하면 대통령과 군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전쟁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하고 대비해야 한다. 핵 참화를 피하기 위해서 모든 걸 해야 한다. 외교안보팀을 전면 개편하고 국내외 안보 브레인들을 폭넓게 등용해 새판을 짜야 한다. 우리의 압도적 경제력과 과학 기술력으로 북을 압도할 핵 억지력 구축을 결단해야 한다. 한일 정상이 만나 전면적 군사협력에도 합의해야 한다. 죽느냐 사느냐, 지킬 것이냐 빼앗길 것이냐. 대한민국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북을 ‘예의 주시’만 하다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적에게 갖다 바칠 수 있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