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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강화도 소창과 기저귀

입력 | 2016-08-25 03:00:00


가내공업 형태로 소창을 짜고 있는 인천 강화군 은하직물.

마당이나 옥상 빨랫줄에 기저귀들이 줄지어 펄럭이던 시절이 있었다. 펄럭이는 기저귀들을 보면서 뽀얀 생명력을 느끼곤 했었는데…. 지금은 아이도 적게 낳고 그나마 기저귀도 대부분 일회용을 쓰기 때문에 이런 풍경을 만나기는 어려워졌다.

천 기저귀는 소창 면직물로 만든다. 소창은 기저귀뿐만 아니라 행주, 이불솜 싸개 등으로 사용되었다. 우리에게 매우 친숙했던 옷감이었지만 지금은 소창 자체가 잊혀져 가고 있다.

그런데 인천 강화군에 가면 지금도 소창을 생산한다. 비록 가내공업이지만 10여 곳에서 직조기가 돌아간다. 현재 소비되는 소창의 대부분은 강화산이다.

강화는 직물의 도시였다. 1916년 강화에 직물조합이 결성되면서 소창과 비단 등의 생산이 본격화됐다. 강화의 직물산업은 1960, 70년대까지 전성기를 구가했다. 1960년대 강화지역의 가정집엔 손발로 천을 짜는 수직기가 6000여 대, 직물공장엔 역직기가 1000여 대 있었다고 한다. 직물공장 종업원이 강화읍에만 4000여 명. ‘강화 비단’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강화 소창은 짜기만 하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그러나 대구를 중심으로 현대식 섬유공장이 들어서고 인조 직물이 등장하면서 강화 직물은 쇠락하기 시작했다. 직물 짜는 사람들도 떠났다. 게다가 소창의 소비까지 줄었다.

몇 년 전 ‘백년의 유산’이란 드라마가 있었다. 3대째 국숫집을 운영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다. 그 드라마를 찍은 곳은 강화의 조양견직 공장 터. 바로 소창을 생산했던 곳이다. 1933년 지어진 공장 건물들은 현재 폐가처럼 방치돼 있다. 강화 소창 100년의 부침을 보여주는 듯하다.

우리네 삶의 애환이 담겨 있는 강화 소창. 그 흔적이 사라지게 해선 안 된다. 쉽지 않겠지만 가내공업을 잘 유지하고, 소창의 부가가치를 높여 다양한 상품으로 개발해야 한다. 조양견직의 건물도 되살려 활용해야 한다. 조양견직 건물들은 외관과 내부 공간이 다양해 그 가치는 더욱 높다. 이곳에서 강화 소창 100년의 역사를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강화 남문 옆 소창 공장 터를 되살린 카페에서도 소창의 흔적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려운 여건이지만, 그래도 100년째 쉼 없이 돌아가는 강화의 소창 짜는 기계. 강화 골목길을 가득 채웠던 그 직조기 소리를 되새겨 본다.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