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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남자의 리우 엿보기]축구장 같았던 男테니스 결승전

입력 | 2016-08-16 03:00:00

브라질 팬들 “아르헨 싫어” 머리 응원, 아르헨 팬들과 광적 응원대결 펼쳐
1825년 3년 전쟁 앙금 아직도 남아




“여기는 축구 경기장이 아니라 테니스 코트입니다.”

14일(현지 시간) 열린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테니스 남자 단식 결승전 도중 주심을 맡은 마리아 파스칼(프랑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 축구 경기장 같았습니다.

브라질 팬들이 앤디 머리(29·영국)를 응원한 건 그가 좋아서가 아니라 상대 선수가 아르헨티나 대표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28)였기 때문입니다.

머리가 코트에 등장하자 브라질 축구 대표팀 유니폼 차림으로 경기장을 찾은 브라질 팬들은 “레츠 고, 앤디”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등장하자 아르헨티나 축구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팬들도 자국 축구 대표팀 응원가를 부르기 시작했고 결국 심판이 중재에 나선 겁니다.

아르헨티나와 전혀 관계없는 경기에서도 브라질 사람들은 틈만 나면 아르헨티나를 깎아내리기 바쁩니다. 전날 열린 여자 축구 8강전에서 브라질은 승부차기 끝에 호주를 꺾었습니다. “브라질, 브라질”을 연호하던 팬들 사이에서 누군가 “마라도나 셰이라도르(cheirador·‘냄새 맡는 개’라는 뜻의 비속어)”라고 외치자 브라질 사람들은 갑자기 아르헨티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를 욕하는 데 정신이 팔리고 말았습니다.

브라질 팬 지오바니 바레투 씨는 “아르헨티나의 모든 게 싫다. 모든 브라질 국민이 똑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가톨릭 국가인 브라질에는 이런 농담도 있습니다. 예수가 최후의 만찬 도중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하리라’고 이야기하자 제자 11명이 먼저 포르투갈어(브라질 공용어)로 ‘Eu n~ao sou(전 아닙니다)’ 하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예수를 배반하는 유다는 스페인어(아르헨티나 공용어)로 ‘Yo no soy(나는 아닙니다)’라고 답했다는 겁니다. 아르헨티나는 스페인어를 사용합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결정적으로 틀어진 계기는 1825년부터 3년간 치른 전쟁이었습니다. 그때 브라질은 시스플라티나 주(州)를 잃었는데 이곳에 새로 들어선 나라가 바로 우루과이입니다.

이날 테니스 경기에서는 머리가 3-1로 승리하고 올림픽 테니스 역사상 처음으로 남자 단식 2연패에 성공했습니다. 두 선수는 경기 후 진한 포옹을 나누면서 축하와 위로를 주고받았습니다.

영국과 아르헨티나는 1982년 포클랜드(말비나스) 전쟁을 치렀지만 이제는 세월이 흘러 서로 협력을 모색하는 사이가 됐습니다. 하지만 브라질-아르헨티나는 약 200년 전 일이 아직도 앙금으로 남아있는 것이죠. 어쩌면 이웃 나라가 싫은 건 인류 보편적인 현상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리우데자네이루=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