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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D/Topic]사랑에 미친 자, 돈을 좇는 자…뮤지컬 ‘잭 더 리퍼’

입력 | 2016-08-12 17:26:00


사진제공 엠뮤지컬아트

‘1888년 8월 31일 금요일 이른 아침, 지나가던 마부가 시체를 발견했다. 난도질당한 채. 42세 매춘부 메리 앤 니콜슨. 발견 당시 그녀는 귀에서부터 목 아래까지 처참히 절단돼 있었다.’(‘가려진 진실’ 중)

19세기 영국 런던을 공포에 떨게 한 연쇄 살인마의 정체는 무엇일까. 실화를 소재로 한 뮤지컬 ‘잭 더 리퍼’가 3년 만에 돌아왔다. 극 중 수사관인 앤더슨은 묻는다. 진짜 살인마가 누구인지. 사랑에 미친 자일까, 아니면 돈을 좇는 자일까.

‘잭 더 리퍼’는 1888년 영국 이스트 런던 빈민가인 화이트 채플 구역에서 최소 5명 이상의 매춘부를 처참하게 살해한 희대의 연쇄 살인마를 다룬 작품이다. 잭은 불특정 남성을 지칭하고, 살인 도구로 칼을 사용했기에 리퍼(칼잡이)라고 불렸다. 당시 빅토리아 여왕까지 나서 해결을 독려할 정도로 관심이 집중됐으나 미해결 사건으로 남았다.

체코 뮤지컬이 원작으로, 국내에서는 2009년 작품 전체가 아닌 음악이나 대본 등 일부만을 가져오는 스몰 라이센스로 들여와 ‘살인마 잭’으로 첫선을 보였다. 체코 버전에는 성불구자인 살인마 잭이 악마와 계약해 살인을 저지를 때마다 쾌감을 느낀다는 내용이 나온다. 아무래도 국내 정서와는 맞지 않아 수술이 불가피했을 터. 그렇게 재탄생한 국내 버전 ‘잭 더 리퍼’는 2012년 일본에 진출해 흥행 돌풍을 일으킬 정도로 원작 이상의 인기를 끌고 있다.

‘잭 더 리퍼’ 사건을 맡은 강력계 수사관 앤더슨은 사건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고 조용히 수사하려 한다. 그러나 특종을 쫓는 런던타임즈 기자 먼로가 코카인 중독자인 앤더슨의 약점을 파고들고, 앤더슨은 먼로에게 특종을 제공하는 대가로 돈을 받는 거래를 하게 된다. 그러던 중 네 번째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사건 현장에 범인을 알고 있다는 사람이 나타난다. 그는 미국에서 온 외과 의사 다니엘. 그는 범인이 7년 전 죽은 줄 알았던 ‘잭’이라고 주장한다.

이번 공연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위험한 거래를 하는 외과 의사 다니엘 역에는 배우 류정한, 엄기준, 카이가 캐스팅됐다. 강력계 수사관 앤더슨 역은 김준현, 박성환, 조성윤이, 연쇄 살인마 잭 역은 이창희와 테이가 맡았다. 초연부터 ‘잭 더 리퍼’ 무대를 지켜온 엄기준은 원숙한 연기로 슬픈 비밀을 감춘 외과의사 다니엘을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대다수 뮤지컬은 관람 전 주요 넘버를 들어보는 게 몰입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 작품은 넘버 자체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현장에서 넘버를 즐기는 것을 추천한다.

1888년의 영국 런던, 아마도 사람 살기에 썩 좋은 동네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영국 역사상 가장 번영한 빅토리아 여왕 때였으나, 빈부 격차가 심각했고 난민이 넘쳐났으며 강력범죄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래서였는지 뮤지컬에서 비슷한 시기 활동한 연쇄 살인마만 봐도 ‘잭 더 리퍼’의 잭 외에도 ‘스위니 토드’의 스위니 토드, ‘지킬 앤 하이드’의 하이드까지 면면이 무시무시하다. 그렇게 많은 작품을 통해 ‘1888년 영국 런던’은 핏빛 로맨스의 도시로 기억된다. 만약 2016년 한국 서울을 배경으로 뮤지컬이 만들어진다면, 이 도시는 관객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10월 9일까지, 디큐브아트센터.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