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 소설가
소치 겨울올림픽 때, 가장 인상적인 선수는 은퇴를 번복하고 금메달에 다시 도전했던 스케이터 이규혁이었다. 그는 세계 최강 스프린터였지만 유독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가 올림픽 메달 획득 실패 후 했던 말이 그래서 유독 내 가슴에 남았다. “안 되는 걸 하려니까 슬펐어요.”
이제 ‘불굴’이라든가 ‘의지’ ‘극복’ 같은 말이 점점 버겁고 힘들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한 번 더’ 도전하려는 인간의 마음에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단지 무모함을 넘어, 자기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안간힘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규혁을 기억하는 건, 나 역시 아니, 우리 모두에게 ‘안 되는 걸 하려니까 슬펐던 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우리가 있는 것 역시 바로 ‘그 안 되는 걸 하면서’ 고독한 시간을 견뎠기 때문이기도 하다.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의 영웅 칼 루이스가 유독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건, 그가 세계 최고의 선수이기 때문은 아니다. 그의 100m 경기에는 늘 이상한 패턴이 있다. 그는 80m 정도까지는 3, 4등을 유지하며 뒤처져 있다. 그러나 마지막 20m 지점에 들어서면 갑자기 무서운 속도로 상대방을 치고 내달린다. 가장 놀라운 건 최고의 속도를 낼 때, 그가 짓는 여유 만만한 ‘미소’다. 맞다! 그는 늘 환하게 웃으며 100m 결승 지점에 1등으로 들어온다.
저토록 무서운 속도를 내면서 웃을 수 있는 여유는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금메달을 따고 우는 선수와 웃는 선수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어린 나이에도 나는 늘 그것이 궁금했다. 하지만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을 해 본 사람에겐 결국 우승도, 패배도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가장 중요한 건 누구도 아닌 ‘내 경기’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그것을 있는 힘껏 즐겁게 끝내는 것이란 걸. 그래서 소치에서 금메달이 아닌, 은메달을 딴 김연아 선수의 그토록 홀가분한 미소가 아름다웠고, 베이징에서 금메달을 깨물며 환하게 웃던 박태환 선수의 저 기념비적인 웃음이 좋았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1990년대 기업 광고는 틀렸다. 우리는 위대한 2인자였던 혁명가 정도전을 기억하고, 아름답게 패배한 김연아도 기억한다. 올림픽엔 1등만 있는 게 아니다. 매번 이기는 삶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최선을 다해 지는 법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그런 세상이 우리를 더 성장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1등보다 멋진 2등과 꼴등도 있다는 걸 안다. 그리고 국민들 역시 이젠 멋지게 지는 선수들에게 기꺼이 박수를 보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믿는다.
백영옥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