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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오늘도 졸 수밖에 없는 이유

입력 | 2016-07-31 08:04:00

‘건당’ 보수 받는 일부 전세버스 기사는 ‘현대판 노예’…규정 있어도 단속 없으면 무용지물




서울 송파구 탄천주차장에 주차된 전세버스들. 승객이 관광하는 동안 대기 중인 운전기사 일부는 차내에서 쪽잠을 자고 있었다.

7월 17일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 입구에서 5중 연쇄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원인은 관광(전세)버스 운전기사의 졸음운전으로 알려졌다. 운전기사 A(57)씨는 수면 부족으로 극도의 피로를 겪으면서도 승객들의 관광 일정에 맞춰 무리하게 운전을 감행했다. 그 결과 총 41명 사상이라는 참사를 낳았다.

졸음운전은 불특정 다수의 생명을 위협하는 도로 위 흉기다. 이번 대형사고로 버스 안전운행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운수업계 종사자들은 “피로 누적은 전세버스 운전기사 상당수가 겪는 일이다. 모든 일정을 승객에게 맞춰 진행해야 해 푹 쉬기가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그럴까. 버스 공영차고지인 서울 송파구 탄천주차장을 찾아 운전기사들을 만나봤다. 이곳은 전국에서 올라온 전세버스 수십~수백 대가 상시 주차하는 차고지다.

줄지어 선 버스 앞에서 A고속 운전기사 김모(66) 씨를 만났다. 김씨는 충청지역에서 올라와 승객들이 서울에서 관광하는 사이 쉬고 있었다. 그는 “운전기사로 일한 지 40년 넘었지만 처우는 좋아지지 않았다. 고객이 운행 임금을 깎으면 그대로 따라줘야 한다.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한 달에 25일가량 일해야 200만 원 남짓 번다”며 자신만의 ‘휴게 공간’을 보여줬다. 차량 짐칸으로 쓰는 트렁크였다. 김씨는 “일정이 1박 2일 이상이면 푹 자야 다음 날 운전하는데, 승객들이 숙소에서 밤늦도록 음주가무를 즐겨 제대로 잘 수가 없다”며 “그나마 잘 수 있는 공간이 트렁크라 침낭을 구비해놓고 여기서 잔다. 그래도 늘 피로하다”고 말했다.

“편히 잘 곳 없어 트렁크가 숙소”경기지역에서 온 운전기사 이모(57) 씨는 버스 안에서 쪽잠을 자고 있었다. 이씨는 “회사원 출퇴근시간에 기업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체력이 되면 낮에 다른 곳에서 일감을 받아 하루 ‘세 탕’ 뛰기도 한다”며 “저녁 퇴근시간에 운전하려면 조금이라도 자둬야 한다. 버스 안이 불편해도 여기밖에 쉴 데가 없다. 여기 주차된 차량들 안에서 운전기사 상당수가 자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전세버스 트렁크 안. 운전사 김모 씨는 “푹 잘 곳이 없어 밤에 는 트렁크에서 잔다. 그래도 늘 피로하다”고 말했다. [지호영 기자]

운전기사들의 만성피로는 과다 업무에서 비롯된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등이 2015년 시내·시외·광역버스 등 운전기사 106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하루 15시간 이상 운전하는 비율이 전체 노동자의 95.7%였다. 특히 경기 시내 및 광역버스 운전은 격일로 교대하는 구조인데, 교대할 만큼 운전기사가 충분하지 않아 하루 15시간 이상씩 사흘 연속 근무하는 경우도 10%를 넘었다. 근무일에 6시간 이상 수면을 취하는 비율도 경기 광역버스는 52.8%, 경기 시외버스는 27.4%로 매우 낮았다.

운전기사의 버스 운행시간을 규제하는 법이 없지는 않다. 근로기준법은 5인 이상 사업장 내 근로자의 주당 근무시간을 40시간, 연장근무를 12시간으로 제한하고 있고 이는 운전기사에게도 적용된다. 하지만 예외조항이 있다. 근로기준법 제59조는 ‘사용자가 근로자 대표와 서면 합의를 한 경우에는 주 12시간을 초과해 연장근로를 하게 하거나 휴게시간을 변경할 수 있다’며 법률이 적용되는 업종 가운데 하나로 운수업을 꼽고 있다. 운수업 종사자들이 “실제론 운행시간이 무제한인 것과 마찬가지”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위성수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정책부장은 “법은 ‘노사 간 합의 아래 연장근무 가능’이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실제로 회사 측의 운행 요구를 거부하기는 어렵다. 해고되지 않고 돈 벌려면 회사가 지시하는 대로 운행해야만 하는 게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시도에 소속된 시내 및 광역버스 기사는 그나마 적정 월급을 보장받는 편이다. 이에 비해 전세버스 운전기사는 운행 건수에 비례해 임금을 받기 때문에 처우 개선을 요구할 형편이 아니다. 업계에 따르면 전세버스는 일감을 따내고자 운행 임금을 낮추고, 기사들은 임금을 조금이라도 더 벌려고 무리하게 버스를 운행해 안전상 위험을 초래한다.

불법 지입차, 단속 통계조차 無 윤춘석 전세버스노동조합 위원장은 “전세버스 기사는 회사와 승객의 ‘현대판 노예’”라고 말했다. 먼저 회사가 주는 대로 일감을 받아야만 한다. 또한 차주인 운전기사가 일감을 따오는 경우도 있기에, 고객관리를 위해 승객들 비위를 맞추거나 짐을 나르고 차내 노래방 기기와 조명을 자비로 설치하기도 한다. 차내 노래방 기기 설치는 불법이지만 ‘승객들이 선호한다’는 이유로 이 같은 위법 행위도 저지른다. 윤 위원장은 “이른 아침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운전하고 차내에서 승객들 노랫소리에 시달리며 쏟아지는 졸음 속에서 운전해도 회사에 항의할 수가 없다. 그 일이라도 해야 생계를 잇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세버스 운전기사의 경우 얼마나 무리한 운행에 시달리는지 통계조차 없는 실정이다. 차량 상당수가 불법인 ‘지입차’ 형태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지입차란 운전기사가 자비로 버스를 구매하고, 차량 소유주 명의를 버스회사로 등록한 후 회사로부터 일감을 받는 것을 말한다. 지입차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의 명의 이용 금지 규정을 위반하는 것이지만, 업계에서는 전세버스의 70~80%를 지입차로 추정한다. 윤 위원장은 “운전기사와 회사가 함께 불법을 저지르는 꼴이니 안전운행이 될 리 없다. 회사는 안전교육이나 차량 정비도 제대로 해주지 않고, 운전기사는 자비로 대충 정비해 불안한 운행을 한다”고 지적했다.

7월 17일 오후 강원 평창군 용평면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 입구에 사고가 난 관광버스와 승용차가 널브러져 있다. 관광버스와 승용차 등 5중 연쇄 추돌사고로 4명이 숨지고 37명이 다쳤다. 운전기사 A씨는 졸음운전을 하다 대형사고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제공·강원지방경찰청]

국토교통부는 영동고속도로 연쇄 추돌사고가 난 지 열흘 만에 운전자의 연속 운전 대책을 내놨다. 7월 27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앞으로 사업용 운전자는 4시간 이상 연속 운전 후 최소 30분간 휴게시간(15분씩 분할 가능)을 갖되 천재지변 등 특별한 사정이 있을 경우에는 1시간 연장운행을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버스 연속운행 제한시간을 지키는 것이 안전의 첫 단계”라고 강조한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해외 일부 국가는 하루 최소 운행시간을 11시간으로 제한하고 잠시 쉬는 ‘휴게’와 수면하는 ‘휴식’ 시간을 분리해 규정한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규정을 어기면 처벌받는 기준을 엄격히 적용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모창환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은 “운행시간 제한 규제만 만들어놓고 실제론 사업용 차량을 단속하지 못한다면 버스 안전운행은 확보되지 못한다. 따라서 사업용 자동차 교통안전점검제도를 상시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전세버스 지입차의 경우 차주인 운전기사가 정비를 부담하고 있는데, 버스회사가 차량 정비 및 안전에 책임지는 법적 제도를 만들면 사고 발생률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