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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D/ Topic]‘버킷 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들

입력 | 2016-07-28 09:23:00

고승철의 종횡무진 시간기행(13)




S대 의과대학 K교수는 한 여름 에어컨 바람이 빵빵하게 나오는 서재의 안락의자에 앉아 인도네시아 산 루왁(Luwak) 커피를 마셔 보았다. 쌉쌀한 맛이 혀를 살며시 자극하더니 향긋한 냄새가 후각을 사로잡는다.


서울시내 특급호텔 커피숍에서 1잔에 5만 원 받는다니 ‘귀족 커피’인 셈이다. 영화 <버킷 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들>에서 주인공으로 나온 배우 잭 니콜슨이 죽기 전에 꼭 마시겠다고 병원에 들어가며 갖고 간 그 커피 아닌가.

언젠가 인도네시아 휴양지 발리에서 열린 학술 세미나에 갔다가 이탈리아에서 온 역사학자 마르티노 박사로부터 선물 받은 커피였다. 최상의 맛이라지만 그동안 마시기를 꺼린 것은 ‘고양이 똥 커피’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마르티노는 그 커피의 유래에 대해 빙그레 웃으며 설명했다.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를 식민 통치할 때 대규모 커피 농장을 운영했지요. 덩치가 산더미만한 네덜란드인들은 체구가 자그마한 인도네시아인들을 마구 짓눌렀고! 현지 노동자들은 힘들여 재배한 커피를 한 모금 맛보기도 어려웠지요. 인색한 농장주들은 값비싼 커피를 벌벌 떨면서 아꼈지요. 묘한 것은 야생동물 긴꼬리 사향고양이가 커피열매 가운데 잘 익은 것만 골라 따먹는다는 겁니다. 그 고양이가 숲속에 똥을 누면 그 속에 채 소화되지 않은 커피원두가 있지요. 인도네시아 토착인들은 똥을 헤집고 커피원두를 주워 볶아 마셨는데 이게 기막힌 향을 뿜는 루왁 커피이지요.”  


K교수는 루왁 커피를 서랍 속에 처박아 두었다가 최근 로마에서 만난 마르티노 박사의 얼굴이 떠올라 꺼내 시음한 것이다. 최상의 커피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이었다. 커피의 온기와 향기가 몸에 퍼지면서 명 연기자 잭 니콜슨의 ‘천(1000)의 얼굴’이 뇌리에 떠오른다.  

유명한 대학의 교수에다 무시로 세계 각국에 여행을 다니는 K교수는 스스로도 ‘금수저’ 반열에 올랐다고 믿는다. ‘흙수저’ 출신인 자신이 불과 한 세대만에 ‘귀족’으로 부상했으니 ‘오!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대한민국!’이라 외칠 만하지 않은가.


K교수는 소년 시절에 집이 없었다. 낡은 반(半) 톤짜리 트럭을 타고 떠돌이 행상을 하는 부모를 두었으니 트럭이 집이나 다름없었다. 농촌에서 무, 마늘, 배추, 고추 등을 사서 인근 도시의 거리를 헤매며 파는 일이었다.

“의성 마늘이 왔어요! 딴딴하고 통통한 여섯 쪽 의성 마늘요! 농협직판장 가격의 절반으로 드립니다요!”

아버지의 마이크 목소리는 골목골목을 누볐다. 간혹 적잖은 이문을 남기기는 했어도 병약한 어머니의 치료비를 대는 데는 턱없이 모자랐다. K소년은 학교를 다니는 둥 마는 둥했다. 엄마가 입원하면 그 옆에서 쪼그리고 잤고 퇴원하면 세 가족이 트럭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엄마는 결국 K소년이 중1 때 병사했다. 무슨 병인지도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미라처럼 바싹 마른 손으로 아들의 손을 잡은 엄마는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엄마 노릇… 못하고 저 세상 가서 면목 없다… 똘똘한 내 아들… 엄마 없다고 기죽지 말고… 요즘 의사 되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 하데… 네가 가난한 병자들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는 게 엄마의 소원인데….”

엄마가 돌아간 이듬해 아버지도 시골 눈길에서 트럭이 미끄러져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바람에 별세했다. K소년은 그때 학교에서 수업 중이었기에 화를 면했다.

 

중2 때 천애고아가 된 K소년은 담임선생님의 주선으로 D일보 지국장의 집에서 숙식하며 신문배달 일에 나섰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배달을 마치고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을 씻을 때면 노동의 보람을 느꼈다. 지국장은 월급도 매달 꼬박꼬박 챙겨주었다.

“빨리 커서 내하고 소주 한잔 하자!”

지국장은 술에 취해 불콰해진 얼굴로 K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를 엄마라 생각하고 우리 집에서 편하게 지내.”

이런 격려의 말씀을 해주시는 지국장 부인은 천사처럼 심성이 고운 분이었다. 그 집의 중1짜리 무남독녀 딸은 또 얼마나 상냥하고 예뻤던가.

“오빠야! 영어 좀 가르쳐 줘!”

사과며 귤이며 맛난 과일을 쟁반에 담아와 내밀면서 영어교과서를 펼치는 것이었다. K소년은 그 소녀와 나란히 앉아 공부하는 시간이 황홀할 따름이었다.


K군이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그 달콤한 시절도 끝이었다. 지국장 가족이 제주도에 감귤 농사를 짓는다며 이사를 떠난다기에 K군은 의탁할 곳 없는 소년이 되었다. 지국장의 딸은 제주도에 도착한 뒤 K군의 학교로 편지를 보냈다.


오빠!

바람이 세게 불 때마다, 파도가 거칠게 너울 칠 때마다 오빠 생각이 나네요.

바다는 왜 그리 넓은지요? 육지는 왜 그리 먼지요?

그래도 바다가 육지라면 달려갈 텐데.

다시 만날 때까지 몸 성히 잘 계세요.

오빠의 꿈은 의사라 했지요? 멋진 의사 되세요.


그 소녀는 하얀 손수건을 동봉했다. K군은 그 손수건을 어루만지면서 트윈폴리오의 <하얀 손수건> 노래를 읊조렸다.


헤어지자 보내온 그녀의 편지 속에

곱게 접어 함께 부친 하얀 손수건

고향을 떠나올 때 언덕에 홀로 서서

눈물로 흔들어주던 하얀 손수건…


중학교 졸업이 눈앞에 닥치자 고교 진학은 언감생심, 밥 먹고 잠잘 곳도 없는 신세였다.

“나랏돈으로 숙식비에 학비까지 몽땅 대주는 공고에 가볼래?”

담임선생님의 말씀은 구세주의 음성으로 들렸다. 적성이고 뭐고 따져볼 겨를 없이 공업고교 기계과에 진학했다.


공고 학우들은 성실했지만 단순했다. 그들 대부분의 인생목표는 ‘훌륭한 기술자가 되어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 따위였다. 절친한 친구의 좌우명은 ‘꿀벌처럼!’이었다. 꿀벌처럼 부지런히 일하겠다는 뜻 아닌가.

고3 가을, 졸업 이후 진로를 탐색할 때였다. 학우들은 고졸 기능공 ‘마이스터’를 우대하는 기업체를 고르느라 즐거운 고민을 했다. 창원공단에 가면 서울에서 멀어져 촌놈이 된다는 둥, 거제도 조선소에 취업하면 ‘섬놈’이 된다는 둥 개똥철학 평론이 난무했다.


그때 K군의 귀에는 어머니의 유언이 아련히 들려왔다.  

“네가 가난한 병자들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는 게 엄마의 소원인데….”

의사가 되려면 의과대학에 가야 한다. 그러나 공고 기계과를 나와 의대에 가겠다고 하면 소가 들어도 웃지 않겠는가? 의대는 최상위권 학생들도 덜덜 떨며 입학원서를 내는 곳. ‘지잡대’ 의과대학도 서울대 공대보다 들어가기 어렵다 하지 않은가.

 ‘망상(妄想)은 파멸의 지름길!’

K군은 이렇게 마음먹고 창원공단으로 가려 짐을 꾸렸다. 심란할 때 펼쳐드는 칼힐 지브란의 잠언집 <예언자>에서 편지 하나가 툭 떨어졌다. 제주도에 간 그녀가 하얀 손수건과 함께 보낸 그 편지였다. 멋진 의사가 되어라!


열패감과 함께 쓴웃음이 나왔다. 그러다 눈앞이 눈물로 흐릿해졌다. 공상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법! 혹시 의대에 가는 ‘로또’급 행운이 오지 않을까?

K군은 공상에 그칠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알아봐야겠다면서 벌떡 일어섰다. 무작정 S대학교에 찾아가 입학 상담하러 왔다고 하니 입학처란 곳으로 가보란다.

“공고 졸업생인데 의과대학에 지원할 수 있습니까?”

“물론이지요. 부모님과 의논하셨나요?”

“부모님 모두 제가 어릴 때 별세하셨습니다.”

“그럼 사배자로 지원하면 되겠네.”

“사배자… 무슨 말입니까?”

“사회적 배려 대상자….”
뜻밖에도 교직원은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혹시나 하고 치른 수능에서 그런 대로 좋은 점수를 얻었고 내신은 최상위급이었다.


K군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S대 의과대학에 당당히 합격한 것이다. 합격증을 들고 부모님 묘소에 가서 큰 절을 올리며 감격의 눈물을 뿌렸다.

‘이제 시작일 뿐!’

K군은 이렇게 마음을 다지며 공원묘원의 황혼 풍경에서 빠져나왔다.

   

입학하니 여러모로 콤플렉스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과학고, 한성과학고 등 명문 과학고 출신이 수두룩했고 국제 물리 올림피아드, 화학 올림피아드 금메달리스트가 셀 수 없이 많았다. 부모 따라 외국에서 살다 온 학생들은 영어를 원어민처럼 쑤알라쑤알라 말한다. 두툼한 영문 원서 교과서도 별 어려움 없이 술술 읽는다.

K군의 별명은 ‘똥통’이었다. 공고를 나왔다니까 그들의 눈에는 ‘똥통 학교’를 나온 이방인으로 비쳤다.


먹고 사는 문제도 골칫거리였다. 첫 학기 등록금은 공고 동창회장이 지원한 장학금으로 냈다. 쪽방 독서실을 구하는 돈은 고교 동기생 10명이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마련해주었다. 

“너 의사 되면 내 포경수술, 부탁한다! 수술비 미리 주는 거야!”

“나는 정관수술 부탁해!”

“울 엄마 아픈 허리 좀 낫게 해주라!”

친구들은 싯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이렇게 한마디씩 던졌다.


K군은 학교 구내식당에서 저녁밥을 먹은 후 식당 아줌마들이 힘들게 설거지하는 모습을 보고 소매를 걷고 나서서 도왔다.

“아이고, 이런 착한 학생이 있나!”

K군의 사정을 들은 식당 책임자는 내일 아침에 먹으라며 깨끗한 용기에 밥과 반찬, 국을 담아 주었다. 이렇게 거의 매일 저녁 구내식당을 방문해서 K군은 밥을 해결했다.


숙식 이외에 용돈도 꽤 들었다. 교통비, 책값, 동아리 활동비 등. 도서관 사서 보조 등의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기는 했지만 턱없이 모자랐다.

궁하면 통한다 했던가. 구내식당 책임자가 조심스레 물었다.

“학생, 좀 힘든 알바 자리가 있는데 해볼라나?”

“힘이 넘치는 젊은 놈한테 힘들 게 뭐 있겠어요?”

“여든 살 할아버지를 수발하는 일이야. 목욕, 산책, 말벗…. 내가 그 집에서 집사로 일한 적이 있는데… 월급도 섭섭잖게 줄 거야.”


전직 고위 공무원인 노인은 부인과 사별한 이후 성북동 저택에서 독신녀인 장녀와 함께 살고 있었다. 도우미 아줌마가 매일 와서 집안일을 보살펴 주었다.

K군이 주로 하는 일은 노인의 말을 경청하는 것. 공책을 꺼내 받아 적는 시늉을 하고 적당한 대목에서는 추임새를 넣어야 했다. 동시통역사라는 장녀는 노인을 모시는 수칙에 대해 간결하게 설명했다.


“저희 아버지는 인터뷰 중독증이 있어요. 관직에 계실 때 기자들이 늘 따라다녔거든요. 그때는 귀찮아하시더니 은퇴 이후 언론이 외면하니 기자들을 그리워하는 거예요. 기자처럼 아버지 말씀 듣고 가끔 질문도 하세요. 아버지를 부를 땐 ‘장관님’이라고 하면 됩니다.”


노인은 K군이 마음에 들었는지 처음엔 1주일에 2회씩 오라 하더니 갈수록 자주 오라 했다. 월급도 두둑이 주어 K군은 여유 있게 용돈을 쓸 수 있었다.


K군은 노인을 목욕시킬 때 온몸에 비누를 정성스레 칠하고 미지근한 물로 깨끗이 헹군 다음 ‘이태리 타월’로 피부를 문질렀다. 이런 일련의 목욕법을 제대로 익히려 목욕탕에 가서 ‘목욕 관리사’에게 노하우를 배웠다. 몸을 말릴 때도 마른 타월로 구석구석 닦고 요가 매트 위에 노인을 누인 뒤 약손으로 전신을 주물러 드렸다.

“의과대학생이라고? 그래서 그런지 자네가 안마를 해주니 묵은 신경통이 다 낫는 거 같아. 아!”

노인은 K군 약손 솜씨에 감탄했다.

“우리 집에 들어와서 살어!”


그래서 그 L장관 집에 살게 되었다. 전직 장관이라지만 K군의 눈에는 여느 할아버지나 다를 바 없었고 발가벗은 몸을 K군에게 맡기고 응석을 부릴 땐 아기나 마찬가지였다.

L장관은 서울시내 호텔에서 열리는 조찬 모임에 가끔 나갈 때는 승용차에 K군을 태웠다. 운전기사는 호텔에 L장관을 내려드리고 K군을 학교에까지 데려다 주었다.


K군은 교양과목으로 듣는 ‘동서문명의 교류’라는 수업 시간에 들어가면 유난히 얼굴이 하얀 여학생 부근에 자주 앉게 되어 가슴이 벌렁거렸다. 출석을 부를 때 귀를 쫑긋 세워 들으니 그 여학생은 백(白) 아무개였다. 이런 걸 정명(正名)이라 하는가. 성씨에 걸맞게 피부가 백설처럼 하얗지 않으냐! K군은 마음속으로 그녀를 ‘백설공주’로 칭하며 짝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고고미술사학과 학생이었다.

고고미술사학! 신라금관, 고려청자, 베히스툰 비석, 둔황 석불 등 문화재가 연상된다. 재벌가 딸들이 할아버지, 아버지가 설립한 미술관, 박물관을 운영하는 노하우를 배우러 이 학과에 몰려든다는 풍문쯤은 ‘똥통 공고’를 나왔어도 들은 바 있다.

 

수강생 5명이 한 팀이 되어 과제물을 제출하라고 한다. K군은 딱히 친한 수강생이 없어 어느 팀에 들어갈까 두리번거리는데 백설공주가 구해주었다.

“너 의예과지? 우리 팀에 들어와.”

“예. 고맙습니다.”

“야! 동기생끼리 무슨 존댓말이냐?”

“음… 고, 고마워.”


K군은 백설공주가 자신의 존재를 안다는 사실에 황송하고 신비롭기까지 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백설공주는 팀 이름을 ‘실크로드’로 짓고 과제 주제를 ‘통일신라 경주에서 페르시아까지’라고 잡자고 제안했다. 다른 팀원은 모두 그녀의 제안에 ‘찍소리’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보니 그녀는 대학 입시를 치른 직후 어머니와 함께 실크로드 여행을 다녀왔단다. 자신이 찍은 사진을 활용하면 과제물의 시각 효과가 뛰어날 것이라 제의했다. 그녀 주도로 리포트는 작성됐고 평점은 A+가 나왔다.


리포트 프리젠테이션을 마친 날 팀원들은 학교 부근 카페에서 간단한 ‘쫑티’를 했다. 귀가하려 전철을 타려 할 때 백설공주가 K군을 따라왔다.

“너네 집 성북동에 있지?”

“어떻게 알았어?”

“동네에서 몇 번 봤어. 나도 성북동에 살아.”

“그, 그랬구나.”

K군은 얼굴이 빨개지며 말을 더듬거렸다.


“등교할 때 너와 함께 차를 타는 분, 너네 할아버지니?”

“할아버지? 음….”

“너네 할아버지 멋쟁이더라! 너 의예과니까 과고 나왔지? 고등학교 다닐 때 학교가 집에서 가까워 좋았겠구나.”

K군이 미처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백설공주는 K군이 서울과학고를 나온 것으로 간주하고 말을 이었다.

K군은 차마 ‘똥통 공고’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그녀에게 먼저 귀가하라고 말했다.

“도서관에 깜박하고 공책을 두고 온 것 같아 찾으러 가야겠다.”

이렇게 엉터리 핑계를 대고 그녀를 따돌렸다. 말이 길어지면 L장관 집의 ‘때밀이 청년’이라는 사실이 밝혀질 것 아닌가. 그런 민망한 상황을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K군의 소망과 달리 이상한 상황이 실제로 벌어지고 말았다. 어느 토요일 오후 목욕을 마친 L장관이 K군의 약손 마사지를 받고 있을 때 주치의가 찾아왔다. 그 주치의는 훤칠한 체격에 눈썹이 새까맣고 코가 우뚝 선 미남자였다.

“장관님, 시원하시겠습니다!”

“백 원장, 어서 오시오. 내가 요즘 이 젊은이 덕분에 몸이 가뿐하다오. 보시다시피 이렇게 안마를 받으니 피돌기가 잘 되는 것 같소.”

헐렁한 팬티 하나를 입고 있던 L장관은 가운을 덧입고 응접 테이블에 백 원장과 마주 앉았다.

L장관은 K군을 백 원장에게 소개시켰다.

“이 총각은 백 원장의 의과대학 후배이오.”

“잘 생긴 청년이군요! 장관님의 손주님?”

“허허허! 그래 맞소! 내 외손주놈이오.”

“처음 볼 때 그런 줄 알았답니다. 눈매가 장관님과 꼭 빼닮았네요!”

K군은 졸지에 L장관의 외손자가 된 셈이다. 어른들 대화에 끼어들지 못해 마른 침만 삼키고 있었다.


“백 원장이 오신다기에 집사 아주머니에게 점심 준비하라고 부탁해 놓았다오.”

“진찰하러 왔지 밥 먹으러 온 건 아닌데요.”

“보시다시피 멀쩡하지 않소? 우리 딸년이 내가 치매 징조 보인다고 왕진 오라고 했지요? 얼른 밥 먹으러 갑시다. 하하하!”

“장관님께 인사시킨다고 제 딸아이도 데리고 왔습니다.”


다이닝 룸에 들어선 백 원장의 딸은 백설공주였다.

“헉!”

K군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백설공주는 눈웃음을 지으며 K군을 응시했다.


세월이 흘러 부부가 된 K와 백설공주는 젊은 날의 이때를 회상하며 티격태격 입씨름을 벌이곤 했다.

“당신은 내가 장관의 진짜 외손자인 줄 알고 꼬리 쳤지?”

“남자들은 여자 특유의 촉을 모르는 바보야. 처음엔 긴가민가했는데 아무래도 가짜 같다는 감(感)을 느꼈어. 당신이 진짜 외손자라면 장관님의 친딸인 L여사님이 이모님이 되는 셈인데 당신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사무적이었어. 세상에 그런 이모는 없어.”

“내가 가짜인 줄 알고 실망했지? 천애고아란 사실을 알고서는 충격을 받았을 것이고. 그런데도 왜 나를 계속 따라다녔지?”

“쇼크를 받은 건 사실이야. 우리 부모님은 더 크게 놀라셨고. 그래도 당신이 신춘문예 3관왕이 되는 바람에 ‘이 천재를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어.”


K군은 의예과 2학년 말에 여러 일간지 신춘문예 공고를 보고 거액의 상금이 탐났다. 당선되면 존재감을 과시할 것이라는 욕망도 작용했다. 문학에는 문외한이지만 낙선해도 손해 볼 것 없다는 계산을 했다. 혹독하기로 이름난 의과대학 본과에 올라가면 이런 ‘외도’를 할 틈이 없을 것 아닌가. K군은 만해 한용운 시인이 기거했던 성북동 심우장, 천재시인 이상이 청춘시절을 보낸 서촌 거리 등을 탐방하며 문학적 정기(精氣)를 흡입했다.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L장관의 서재에 열흘 동안 칩거하며 시, 단편소설, 미술평론 쓰기에 도전했다. 시는 ‘백설공주’ ‘구내식당 아줌마’ ‘내 친구는 공돌이’ 등 10편을 완성했다. 알고 지내는 지인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들의 신산(辛酸)한 삶을 시적(詩的) 언어로 정리했다. 단편소설은 ‘트럭행상 김씨 가족의 겨울’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어린 시절 체험을 진솔하게 밝혔다. 미술평론은 ‘신라금관과 페르시아 왕관에 관한 일고(一考)’라고 현학적(衒學的)인 제목을 붙이고 교양과목 수강 때 읽은 책들을 참고로 일필휘지 작성했다.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졌더라!”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이 한 말이던가. K군은 새해 벽두에 주요 일간지 3개에 활짝 웃는 얼굴 사진과 함께 당선작이 실리는 영광을 누렸다. 심사위원들에게서 한결같이 ‘한국 문단을 이끌어갈 차세대 유망 작가’라는 찬사를 들었다. ‘신춘문예 3관왕’이라는 인터뷰 기사가 1월 내내 일간지, 주간지, 여성잡지 등에 실렸다.

제주도 감귤농장으로 이사 간 소녀가 의과대학 교학실로 신춘문예 당선을 축하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왔다. 그 소녀의 얼굴과 이름이 K군의 기억에서 가물가물했다.


신문을 정독하는 일을 거의 신성시(神聖視)하는 L장관은 K군의 인터뷰를 보고 감동을 받았음인지 K군의 손을 꼭 쥐고 말했다.

“자네 체험을 쓴 것이지?”

“예, 장관님.”

“고생 많이 했구먼. 이젠 나를 장관님이라 부르지 말고 할아버지라 불러!”

“예?”

“자네처럼 총명하고 성실한 손자를 갖고 싶네.”

“…….”

“백설공주… 누군가? 혹시 백 원장의 딸? 허허허….”

“…….” 

  

‘럭키 가이’ K군은 L장관의 후원으로 학비 걱정 없이 대학을 마쳤고 인턴, 레지던트, 군의관, 펠로 등 정통파 코스를 거쳤다. 전공분야는 정신과. 백설공주의 아버지인 백 원장의 전공이 정신과여서 영향을 받았다. 석·박사 과정에도 등록해 30대 중반엔 박사학위를 받았다. 결혼은 군의관 때 했다.


백 원장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K씨는 드디어 S대 의과대학 교수로 임용됐다. 의과대학 입학 동기생 가운데 모교 교수가 되기는 처음이었다. 대학 입학 무렵에 K씨에게 ‘똥통’이란 별명을 붙인 물리 올림피아드 금메달리스트는 축하 모임에서 폭탄주를 서너 잔 마신 후 K에게 횡설수설했다.

“야! 축하한다! 똥통! 네가 부러워 배가 아파 죽겠다. 너는 내가 사모하던 백설공주님을 가로챈 도둑놈이기도 하다. 암튼 백설공주님 눈에서 눈물방울 하나라도 흐르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화학 금메달리스트는 눈알을 대굴대굴 굴리며 맨 정신으로 말했다.

“자네 인생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네! 훗날 자네가 회고록 내면 베스트셀러가 될 거야. 인생은 반전(反轉)이 있어야 흥미진진한 것 아니겠어?”

  

 K교수는 친구의 말대로 또 반전했다. 임상 의사로서 정신과 환자를 진료하면서 약물치료와 함께 미술치료, 음악치료, 독서치료 등으로 치료 방법을 넓혔다. 이를 정통파 정신의학계에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의과대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로서는 ‘의료윤리’ ‘치유 인문학’ ‘안락사(euthanasia)의 여러 문제’ 등의 과목을 개설했다. 학자로서는 의학의 역사 분야에 여러 논문들을 썼다.


로마에서 갖고 온 클레오파트라의 왕관과 브루투스의 검.

K교수는 이 소중한 문화재를 자택 서재에 보관하는 게 불안했다. 어디 안전한 곳이 없을까? 그는 혼자서 며칠 동안 궁리하다 ‘백설여왕’에게 상의했다.

“여보! 수장고가 튼튼하고 관장이 믿음직한 미술관, 어디 없겠소? 내가 맡겨야 할 인류문화 유산급 특수 유물이 있어서….”

“인류문화 유산급? 당신, 요즘 자꾸 황당무계한 말을 하네요. 도대체 뭔데요?”


K교수가 왕관과 검을 보여주면서 취득 경위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극비리에 추진해야 하오.”

“당신, 이제 소설가로 다시 활동하려고 해요? 추리소설? 판타지?”

“엄연한 사실이고 현실이오!”

“호호호! 당신이 미간을 찌푸리고 진지하게 말하니까 진짜 같이 보이네. 언제 그렇게 연기력까지 늘었어요?”

“내 말을 못 믿겠다는 거요?”

“정신과 의사 중에 ‘살또’가 많다더니 당신 좀 이상한 것 아니에요?”

백설여왕은 검지를 곧추 세워 머리 주변을 빙빙 돌리며 말했다.

“살또가 뭐요?”

“살짝 또라이… 이런 사람은 환자로 보기에도 애매해서 치료약도 없다 하던데요. 호호호!”

“농담 마시오!”


백설여왕은 고구려 고분 미술을 전공한 미술사학 박사다. 그녀는 그 왕관과 검을 보고서는 남편의 말이 허황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로마, 이집트 미술에 대해 전문적인 식견은 모자랐지만 문양과 재료 등을 세심히 살피니 모조품은 아닌 듯했다. 다만 클레오파트라 여왕이 직접 쓴 왕관인지, 브루투스가 시저를 찌른 바로 그 칼인지는 알 수 없었다.


백설여왕은 믿을 만한 전문가 몇몇을 불러 감정을 의뢰했다. 의견은 엇갈렸다. 유럽의 브로깡뜨(골동품상)에 지천으로 널린 허접 고물이라는 의견에서부터 기원전 100년 무렵의 진품일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까지 다양했다. 

 

그 무렵 대학동창회에 간 백설여왕은 최근 이탈리아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동기생 H를 만났다.

“공부한 곳이 피사 대학이라 했지?”

“그래. 피사라 하면 기울어진 피사 사탑만 연상해서인지 그것만 물어보는 사람이 대부분이야. 미술사학 분야에서 정상급 학교인데….”

“전공 분야는?”

“로마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 시대 미술이야. 아우구스투스는 시저의 위업을 계승하면서 아그리파와 더불어 고전주의 미술을 채용했지. 박사 논문은 네오 아티카 파(Neo-Attic School)에 관한 것이었어.”

“네오 아티카?”

“아티카의 수도 아테네에서 일어난 고전주의 복고운동이지.”


백설여왕은 H박사를 집으로 초대해 클레오파트라의 왕관과 브루투스의 검을 보여주었다. H박사는 근 1시간 동안 요조모조 살피더니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이것, 진품 같은데….”

옆에 있던 K교수가 맞장구쳤다.

“그런 것 같지요? 제가 직접 받아온 것입니다만….”


H박사는 한숨을 쉬고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었다.

“이탈리아 고고미술사학계에서 2000년 간 이 왕관과 검의 행방에 대한 미스터리가 구전(口傳)되고 있답니다. 저도 문헌에서 본 바는 없고 지도교수님에게서 얼핏 객담으로 들었을 뿐이에요.”

“그런 귀중품을 왜 제게 주었을까요?”

“그것도 미스터리입니다. 그렇잖아도 제가 귀국한다고 지도교수님께 인사하러 갔더니 한국에 가면 몸조심하라고 당부하더군요. 이탈리아에서 미술사 전공했다는 이유만으로 범죄조직의 납치대상이 될 수도 있다면서.”

“이 물건이 한국으로 왔다는 사실이 이탈리아 고미술학계에 소문이 퍼졌을까요?”

“극소수 전문가들은 낌새를 알아챈 모양입니다. 교수님 서재에 이렇게 한가롭게 놓아둘 물건이 아닙니다. 국립 중앙박물관 특수 수장고에 넣어야 합니다.”

“국가기관에 알리고 싶지 않습니다. 비밀이 보장될 수 있는 사설미술관을 골라야지요.”

“그럼 리움, 호림 같은 권위 있는 미술관은 어떨까요?”

“그곳은 너무 유명해서 곤란합니다. 어디 은밀한 곳 없을까요?”


H박사는 프랑스에서 학위를 받고 얼마 전 귀국한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소설에나 나올 법한 기상천외한 영감님을 만났어. 선계(仙界) 비슷한 곳에 미술관을 지은 모양인데 관장을 뽑는다 해서 나도 면접을 봤지. 그 영감님의 재력은 어마어마하다 하데. 그곳 컬렉션 리스트는 가액으로 따지면 천문학적인 규모라 하고… 풍문에 따르면 히틀러가 2차 대전 때 유럽 각국에서 탈취했다가 행방불명된 미술품 상당수가 그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는 거야. 면접에서 떨어졌지만 염치 불구하고 그 미술관에 구경이라도 가고 싶네.”

“미술관이 어디에 있는데?”

“나도 몰라.” 


H박사가 이 이야기를 K교수에게 전해주었더니 K교수는 이곳이 최적지라는 느낌이 얼핏 들었다. 그러나 그 미술관의 설립자가 베일에 가린 인물이라 하니 어떻게 접촉하겠는가.

백설여왕이 고고미술학계 선후배 인맥을 훑자 그 괴짜 컬렉터 영감님의 윤곽이 잡혔다. B그룹 창업자 J회장, 그의 딸 J여사는 강남 사교계의 마당발, J여사의 남편은 중견그룹 S회장.

백설여왕은 도곡동에 사는 친구에게 J여사를 아느냐고 물었다. 같은 르네상스회 멤버라고 했다. 그 친구의 주선으로 백설여왕은 J여사를 하얏트호텔에서 만났다.


“친정아버님께서 대단한 미술관을 설립하셨다고요?”

“아직 소장품 정리도 마치지 못했습니다. 대외적으로 공개할 미술관도 아니고….”

“실은 제 남편이 극히 중요한 문화재를 입수했는데 보관할 곳이 마땅찮아서… 그곳에 맡길까 합니다만….”

“저는 아무런 결정권한이 없습니다. 새로 부임한 관장이 결정하실 일이군요.”

“관장님을 뵙게 해 주세요.”


백설공주는 며칠 후 J여사의 연락을 받고는 어이가 없었다. 관장을 면담하려면 미술관측에서 제공하는 승용차로 오되 차 안에서는 눈가리개를 착용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소재지가 극비이기 때문이란다. K교수는 동의했다.

“일단 관장을 만나보고 현장을 살핀 다음 나도 결정하겠소. 나 혼자 갈 테니 당신은 집에서 기다려요.” 


K교수는 첩보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미술관 승용차를 타고 출발했다. 운전기사 이외에 건장한 체격의 보디가드 하나가 뒷좌석에 앉아 K교수를 안내한다면서 사실상 감시했다. 눈가리개로 눈을 덮으니 세상이 캄캄해졌다. 두어 시간 달렸을까?


“어서 오십시오. 멀리 오시느라 힘드셨겠습니다.”

K교수가 눈을 떠보니 관장은 여성이었다. 실내에서도 큼직한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얼굴을 감추려는 의도인 듯했다. 관장실 인테리어는 극도의 단순함을 추구하는 콘셉트로 꾸며졌다. 벽, 책장, 책상, 의자 모두 흰색 일변도였다. 아래 위 흰색 옷을 입은 관장의 붉은 입술 루주와 검은 선글라스가 일탈(逸脫)의 색조랄까.


“이 미술관의 설립 목적은 뭡니까?”

K교수가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자 관장은 살짝 웃으며 비서에게 차(茶) 심부름을 시켰다.

“커피 한 잔 마시고 한숨 돌린 뒤 말씀드릴게요. 교수님도 커피 괜찮겠지요?”

“커피 좋지요. 그런데 제가 교수라는 사실은 어떻게 아시는지요?”

“저희 미술관에 오시는 분은 모두 사회 명사이시죠. 저희가 당연히 알아 모셔야지요.”

“제 신상을 미리 파악하셨군요.”

“언짢게 여기지 마세요. 보안을 위해 출입자의 신상에 대해 철저히 검증한답니다. 로마 여행은 만족하셨습니까?”

“음….”


비서가 갖고 온 커피를 한 모금 마셔보니 쌉싸름한 맛과 시큼한 향기가 익숙했다.

“루왁이군요!”

K교수가 가볍게 탄성을 지르자 관장이 얼른 화답했다.

“교수님은 미각도 뛰어난 분이네요. 루왁의 진가(眞價)를 아는 분은 미술품의 가치도 잘 이해하시지요.”


관장은 미술관 설립 목적에 대해 설명했다.

“1단계로 해외에 흩어져 있는 국보급 문화재를 되찾아오는 일입니다. 정부가 앞장서도 공식적인 루트로는 해외 반출 문화재를 환수하기 어렵기에 저희가 나선 것입니다. 저희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찾아올 것입니다. 수천 억, 수조 원이 들더라도 돈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2단계로 동서양 문명사에서 주요한 유물들을 가급적 많이 확보할 작정입니다. 루브르나 대영박물관급으로 키운다는 원대한 포부를 지니고 있습니다. 3단계로 국립중앙박물관 정도의 규모로 커지면 이 미술관을 공개해 여기가 문화발흥의 중심지가 되도록 할 계획입니다.”


K교수는 관장의 발언이 허황되게 들려 쓴웃음을 짓는데 관장이 질문했다.

“허황되게 들리시지요?”

“허허, 관장님은 독심술(讀心術)도 하시나요?”

“다소 과장된 면이 있겠지만 각오가 그만큼 단단하다는 뜻이니 너그럽게 이해해 주십시오.”


K교수도 오해가 조금 풀려 맡길 왕관과 칼에 대해 언급했다. 관장은 입수 경위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K교수는 세세히 밝히기 곤란해 이탈리아에서 학술용으로 기증받았다고 둘러댔다.

“사진을 찍어 놓으셨지요? 보여 주시겠습니까?”

관장의 요청에 K교수는 휴대전화를 꺼내 클레오파트라의 왕관과 브루투스의 칼 사진을 보여주었다.

“교수님, 이건 로마 고물상에서 산 아이들 장난감 아닙니까?”

“예?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고?”


K교수는 눈을 껌벅거리며 관장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청담동 명품가게 주인 O대표? 닮았다 싶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데 그녀가 선글라스를 확 벗었다.

“호호호! 죄송해요. 저 아시겠죠?”

O대표가 맞다. 공항 입국 세관검사소에서 그녀가 바로 뒤에 따라오며 ‘아이들 장난감’이라는 K교수의 말을 듣지 않았는가.

“헉!”

“저희는 장난감 보관소가 아닙니다.”

“아, 비밀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둘러댔을 뿐입니다. 이건 진품입니다.”

“진품으로 알고 소중히 보관하겠습니다.”


고승철 소설가 songchee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