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티모어 김현수.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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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바닥서 주전까지…불굴의 정신으로 ‘존재의 가치’ 증명하다
팀이 외면해도 나홀로 ‘몸 만들기’
출전 못할때면 끼니를 줄이는 독기
두달만에, 홈팬들의 야유를 환호로
그것은 재주가 아닌 간절함이었다
개막전 날, 홈팀 관중들의 야유를 듣게 된 선수의 심정을 상상할 수 있을까? 개막 후 5경기 동안 단 1경기도 나가지 못하고 벤치에 앉아있어야 했던 선수의 기분을 짐작할 수 있을까? 이에 앞서 구단과 감독으로부터 “안 쓰겠다. 마이너로 가라”는 사실상 불신임을 접하고도 메이저리그 거부권을 행사하고 버틴 선수의 고독을 헤아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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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범함은 평범함의 반복에서 나온다
김현수는 신고선수 출신으로 2006년 두산에 입단했다. 쉽게 말해 연습생으로 들어갔다. 당시만 해도 김현수는 장타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발이 빠르거나 수비를 잘하는 것도 아닌 특색 없는 선수였다. 공을 잘 맞추는 재능은 있었지만 이것만으로 프로팀의 지명을 받진 못했다. 연습생 출신에게 구단이 공을 들일 리도 없었다. 그러나 노력하면 반드시 누군가는 알아봐주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사람 보는 안목이 남다른 두산 김태룡 단장과 김경문 감독(현 NC 감독)은 김현수에게서 비범함을 봤다. “신인들이 들어오면 경기도 이천 2군 연습장에서 밥을 먹이고 재운다. 어린 선수들이라 밥이 나오면 허겁지겁 배를 채우고 나가기 바쁘다. 그런데 (김)현수는 마지막까지 자리에 남아서 천천히 밥을 먹었다.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몸을 만들기 위해 먹는 것이었다.” 그렇게 김현수는 몸을 만들어 파워를 키웠다. ‘타격기계’ 김현수는 그저 재능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김현수는 원래 1루수였다. 두산은 김현수를 외야수로 전향시켰는데 처음에는 수비가 엉망이었다. 그런데 훈련 중 아무리 야구장 펜스에 부딪혀도 아픈 내색하지 않고 벌떡 일어섰다. 김경문 감독의 눈에 꽂힌 것은 김현수의 재주가 아닌 간절함이었다. 어쩌면 일상의 권태와 회의를 극복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비범함이다.
● 코리안 메이저리거는 우리 시대의 초인(超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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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0일 탬파베이와의 데뷔전에서 김현수는 내야땅볼만 나와도 전력을 다해 뛰었다. 행운이 깃든 내야안타 2개가 그렇게 나왔고, 실타래가 거짓말처럼 풀리기 시작했다. 출장 기회가 점점 늘어났다. 잘하는 선수를 벅 쇼월터 감독이 안 쓸 이유가 없다. 7일 다저스전 7타수 2안타를 포함해 김현수의 타율은 0.336(143타수 48안타)에 달한다. 이제 김현수의 얼굴만 봐도 팀에 동화됐음을 알 수 있다. 철학자 니체는 ‘무릇 인간은 초인을 지향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여기서의 초인은 완전무결한 존재를 일컫는 것이 아니다. 일생의 목표를 품고 그 꿈을 향해 굴하지 않고 걸어가는 사람을 뜻한다. 한국에서 보장된 부와 명예에 만족하지 않고 더 큰 무대로 달려간 코리안 메이저리거들도 그런 면에서 이 시대의 초인들이다. 초인이 인격적으로 완벽할 순 없다. 그러나 그들의 향상심만큼은 고결하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