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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인 컬처]음모론보다 더 무서운건, 음모론이 통하는 사회신뢰의 균열

입력 | 2016-07-06 03:00:00

중요 사건 있을 때마다 왜 연예계 스캔들 터질까




《 에이전트5(김윤종 기자)가 ‘사라졌다’. 메이데이, 메이데이. 비상사태가 벌어졌다. 최신 워키토키는 “앞으로 함께할 수…”에서 끊긴 채 먹통. 그렇게 말렸건만. 머나먼 행성 ‘망원동’(이름마저 멀어 보인다!) 탐사를 떠나더니. 에이전트41(김배중)은 은하계 CGV에서 겪었던 수많은 외계 생명체가 떠올라 식은땀이 흘렀다. 이대로 넋 놓고 있을 수는 없을 터. 에이전트41은 ‘콘클라베’를 소집했다. 숙취로 장기휴업 중이던 에이전트7(임희윤)도 참석했다. 게다가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에이전트2(정양환)와 23(이서현), 31(장선희)까지. 오랜 탁상공론 끝에,드디어 굴뚝에 연기를 피워 올렸다. “우리는 에이전트5가 알 수 없는 세력의 공격을 받았음을 천명….” 그런데 갑자기 까똑 까똑. 휴대전화를 울리는 긴급 알림 메시지. ‘배우 A 씨, 가수 B 씨와 한강에서 치맥 즐겨.’ 뭐야, 에이전트5의 실종은 이대로 묻히는 건가. 끄응, 에이전트2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음모야….”  》

○ 음모론, 그 달콤 쌉싸래한 유혹


지구 한반도라는 땅에서 음모론은 더이상 음모가 아니다. 상당수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 최근엔 쉴 새 없이 터지는 연예계 사건 사고가 더욱 부채질했다. 수많은 누리꾼이 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을 정도. 대표적인 것만 봐도 아래와 같다.

① 가수 조영남의 대작(代作) 논란=직전에 터진 어버이연합 배후 지원설 묻힘.

② 박유천 성폭행 논란(지난달 10일)=△정부의 전기 가스 단계적 민영화 암시(14일) △방위사업청 KF-16 개량 사업비 100억 원 손실(16일) △존 리 전 옥시 대표 영장 기각(17일)

③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 불륜설(지난달 21일)=△정부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같은 날) △검찰 정운호 게이트 전관예우 없음 결론(20일 발표)

심지어 지난달 26일 안타깝게 저세상으로 떠난 배우 김성민에 대한 뉴스마저 음모론으로 보는 시각까지 등장했다. 허나 이는 에이전트들의 양심상 다루지 않겠다.

설문조사 결과는 더욱 충격이었다. 조사업체 엠브레인의 도움을 얻어 지난달 24일부터 나흘간 20∼50세 남녀 200명씩 400명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표 참조). 응답자 가운데 무려 74.5%가 음모론을 ‘사실이라고 믿는다’고 대답했다. 특히 남성(66.5%)보다 여성(82.5%)들의 확신이 컸다. 연령별로는 20대(68%), 50대(67%)보다 30대(80%)와 40대(83%)가 더 음모론을 믿는 경향이 컸다. 알 만한 사람들이….

도대체 이들은 왜 이리도 경도된 것일까. 지나가던 지구인 하나를 붙잡고 따져봤다.

“박유천이나 김민희 사건을 봐요. 포털사이트에 수많은 관련 기사가 쏟아지며 다른 이슈는 눈에 들어오지 않잖아요. 게다가 방송 메인 뉴스마저 대문짝만 하게 다루니 ‘뭔가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들죠. 평소 연예 기사에 이렇게 오버했던가요? 한번 묻힌 다른 사건을 따로 검색해서 찾아볼 사람은 많지 않거든요.”(20대 대학원생 송모 씨)

○ 음모론은 사회적 불신이 빚어낸 현상


사실 지구에 음모론이 뿌리내린 지는 오래됐다. 해외 요원들에 따르면 1962년에 대표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할리우드 스타 메릴린 먼로가 사망했을 때 미 중앙정보국(CIA) 개입설이 파다했다. CIA 내부 비밀 폭로를 덮기 위해 그의 죽음을 이용했다는 루머다. 국내에서도 2011년 가수 서태지의 결혼 및 이혼 보도는 BBK 비리 의혹과 맞물렸고, 지난해 한류스타 배용준의 결혼식은 고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사건과 시기가 겹쳤다.

하지만 왜 루머 수준이었던 음모론은 갈수록 힘을 얻고 있을까. 지구인 전문가들은 이를 사회적 신뢰에 균열이 생긴 징후라고 입을 모았다.

“이 사회에 깊숙이 침투한 ‘진영 정치’가 음모론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끼리끼리 어울리며 보고 싶은 면만 보는 문화가 형성된 거죠. 사회적 신뢰가 바닥에 떨어지니 주위 사람에게서 얻는 정보만 믿는 겁니다.”(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공적 제도에 대한 신뢰가 근본부터 무너졌습니다. 정부 등 권력기관이 특정 사건이나 현안에 대해 명쾌한 결론을 보여주지 못하는 게 원인이라고 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그들만큼 사회적 ‘영향력’은 있지만 ‘권력’은 없는 연예인으로 쉽게 눈을 돌리는 거죠.”(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음모론은 실체가 없다. 허나 현실을 좀먹는 힘은 강력하다. 어쩌면 음모론은 뭐 하나 속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는 세태를 향한 소리 없는 울분의 표출은 아닐는지. 그나저나 에이전트5는 그의 부재가 쏟아지는 기사에 묻혀버린 건 알고 있을까. 하지만 상념도 잠시. 콘클라베가 끝난 뒤 귀환하던 요원들은 뭔가 묘한 기운을 내뿜는 빛줄기에 눈살을 찌푸리는데….(다음 회에 계속)
 
정양환 ray@donga.com·김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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