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광해 음식평론가
‘큰놈은 길이가 1장(丈)에 이르며, 모양은 뱀을 닮았다. 덩치는 크지만 몸이 작달막한 편이고 빛깔은 거무스름하다. 대체로 물고기는 물에서 나오면 달리지 못하지만, 해만리만은 유독 뱀과 같이 잘 달린다. 머리를 자르지 않으면 제대로 다룰 수가 없다. 맛이 달콤하고 짙으며 사람에게 이롭다. 오랫동안 설사를 하는 사람은 이 물고기로 죽을 끓여 먹으면 낫는다.’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전(1758∼1816)의 ‘자산어보’에 나오는 뱀장어, 바닷장어에 대한 설명이다.
뱀장어는 미끈미끈하다. 조선시대 선조들은 뱀장어, 장어에 대해서 끊임없이 의문을 가졌다. 장어, 뱀장어는 아무리 살펴보고 되짚어 봐도, 자꾸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알 수 없는 존재였다.
붕장어(O長魚)는 ‘해대리(海大려)’다. ‘바다의 큰 장어’라는 뜻이다. ‘자산어보’에서는 ‘눈이 크고 배 안이 먹빛이다. 맛이 매우 좋다’고 했다. 뱀장어, 갯장어, 붕장어를 정확히 구분하면서 장어를 혼란스럽게 여겼던 것은 바로 장어 출생의 비밀 때문이었다.
뱀장어는 바다에서 태어나 민물에서 살다가 산란기에는 다시 깊은 바다로 돌아간다. 다른 회귀성 어류와는 정반대다. 뱀장어는 사람들이 관찰하기 힘든 해저 2000∼3000m 깊은 바다에서 알을 낳고 죽는다.
뱀장어는 산란장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육안으로 암수의 구별이 불가능하다. 암컷의 배 속에도 알은 없다. 뱀장어는 산란장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알을 제대로 가진다. “뱀장어는 그믐밤에 자신의 그림자를 가물치의 지느러미에 비추고 그곳에 알을 낳는다. 그믐밤에 뱀장어는 가물치와 교미하여 알을 낳고 수정한다. 뱀과 가물치가 교미하여 새끼를 낳는다”는 식의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떠돌았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알 가진 뱀장어’를 본 적이 없었다. 깊은 바다에 산란한 알들은 ‘댓잎장어’의 형태를 거쳐 ‘실치’가 된다. 장어 양식은 실치 상태의 작고 가는 뱀장어 새끼를 채집하여 양식장에서 기르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일찍부터 뱀장어를 귀히 여겼다. 조선 중기의 문신 남용익(1628∼1692)이 조선통신사 종사관으로 일본에 갔다. 그는 “(일본인들은) 구이(炙)는 생선이나 새(鳥)로 하는데 뱀장어를 제일로 친다”고 했다(‘문견별록’). 우리도 뱀장어를 먹었다. 매천 황현(1855∼1910)의 ‘매천속집’에는 ‘밀양 효자 박기재’와 뱀장어에 얽힌 이야기가 실려 있다. 박기재의 할머니가 풍진을 앓았는데 의원이 뱀장어가 좋다고 했다. 한겨울에 뱀장어를 구할 도리가 없어 박기재가 얼음을 손으로 긁고 있는데 갑자기 얼음이 갈라져 뱀장어가 나타났다. 그 뱀장어를 올리니 할머니의 병이 나았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다.
뱀장어를 귀한 음식으로 여기는 것은 일본 풍습을 따른 것이다. 조선 8대 국왕 예종이 족질(足疾) 발병 치료차 뱀장어를 먹었다는 이야기는 근거가 없다. 뱀장어를 보양식 혹은 궁중보양식으로 부르는 것도 물론 엉터리다.
황광해 음식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