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김용희 감독. 스포츠동아DB
김용희 감독 사라진 ‘시스템 야구’
선수들 팀 비전 공유 못하는 현실
일관성 있는 ‘SK만의 야구’ 절실
# SK는 아직도 2011년 8월11일의 ‘트라우마’와 싸우고 있다. 김성근 감독을 경질한 날이자 SK가 현장에 권력을 집중시키는 체제와의 결별을 선언한 순간이다. 야구철학에서 김 감독과 대조적인 이만수 감독이 후임자였다. 그러나 이 감독의 순수한 성품과 별개로 여러 경로의 소통과 조정이 매끄럽지 않았다. 선수단 내 평판이 좋고, 프런트와 얘기가 통하는 김용희 감독이 대안인 것은 수순처럼 비쳤다. 김 감독을 통해 영속적인 ‘시스템’을 심기로 했다. 그러나 김 감독은 팀 전체에 비전을 전달할 설득력과 실행력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고심 끝에 SK 프런트는 프리에이전트(FA) 전략 변화, 코치진 개각, 타자친화적인 야구장에 맞는 라인업 구성 등 디테일한 보완을 가했다. 그러나 무기력하고 무색무취한 패턴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
# 야구기자를 하며 가장 안타까운 점 중 하나는 ‘아무리 프런트가 일을 잘해도 야구를 못하면 다 묻히는 현실’이다. 신영철 전 사장 재임 기간 SK는 ‘스포테인먼트 프레임’을 선점했다. 야구장 인프라를 개선했고, 마케팅을 강화했다. 이어 등장한 임원일 전 사장은 잘 드러나진 않아도 누군가는 해야만 했던 ‘소프트웨어적 서비스’에 역점을 뒀다. 주차장 관리혁신, 야구장 IT기능 강화 등이 그랬다. 류준열 현 사장 체제에서는 육성과 마케팅에 걸쳐 야구단의 미래를 담보할 ‘그랜드 디자인’을 설계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성적이 못나면서 노력은 ‘야구나 잘해라’는 식의 조롱으로 폄하되고 있다.
# 그러나 정작 SK가 진짜 아파하는 말은 ‘야구 못 한다’가 아니라 ‘SK야구의 컬러가 무엇인가’란 물음에 대한 답이 없는 현실이다. 한마디로 지금 SK 구성원들은 팀이 어디로 가는지 비전을 공유하지 못한다. 사실 김용희 감독의 ‘시스템 야구’는 KBO리그 풍토에서 꽤 혁신적 목표였다. 그러나 단기 성적이 안 나니까 바로 좌초됐다. ‘멀지만 가야할 길’이라는 구단 안팎의 컨센서스를 확보하는데 김 감독의 소통능력과 역량이 못 미친 탓이다. 야구계에서 김 감독을 두고 “많이 듣지만 정작 움직임이 없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대의를 관철하려면 리더는 위악자가 되어야 할 때가 있는데 ‘좋은 사람 콤플렉스’가 추진력을 저해한 셈이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