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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칼럼]박태환의 ‘약물 메달’은 없다

입력 | 2016-06-08 03:00:00

주종목 400m 세계랭킹 4위… 28세 박태환 올림픽 나가도
동메달조차 불확실… 국가대표 선발규정 바꾸어
약물 전과 지워주는 것은 스포츠 정신에 위배
스포츠 국가주의로 독재 가리는,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수준으로
한국이 내려갈 순 없다




황호택 논설주간

소련 동독 등 사회주의 국가들은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려는 목적으로 올림픽 메달을 획득하는 데 국가 역량을 쏟아붓다시피 했다. KGB 출신인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스포츠 국가주의의 향수가 강한 탓인지 겨울올림픽과 월드컵 유치에 열을 올렸다.

스포츠가 국민을 단합시키는 효과가 큰 것은 굳이 여러 사례를 들 필요가 없다. 1998년 외환위기 때 박세리 선수가 US여자오픈에서 양말을 벗고 연못에 들어가 공을 쳐내며 거둔 승리는 한국인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는 데 격려가 됐다. 그런데 푸틴처럼 메달 획득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러시아에서는 예술 스포츠 같은 분야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국가 종교처럼 됐다. 16년 장기집권 중인 푸틴은 국민의 지지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스포츠 국가주의를 활용하고 있다. 러시아는 2014년 소치 올림픽을 치르는 데 54조 원을 썼고, 안현수 빅와일드 같은 선수들을 귀화시켜 20년 만에 겨울올림픽에서 1위를 차지했다. 러시아 선수가 상위 그룹에 속한 종목에서 판정 논란이 그치지 않았다.

최근에는 러시아반도핑기구(RUSADA) 전직 책임자가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소치 올림픽에서 선수들의 경기력을 향상시키는 약물을 투여하는 국가적 프로그램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그리고 국가정보기관이 러시아 선수들의 도핑 샘플을 바꿔치기하는 일에 관련됐다는 것이다. 도핑 적발 기술의 발달에 따라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도핑 샘플에 대한 재조사가 진행되면서 러시아 국적 10여 명의 선수가 메달을 상실할 위기에 처해 있다.

한국은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5위, 베이징 올림픽에서 7위를 했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도 10개 내외의 금메달을 기대하지만 비행시간 20시간, 시차 12시간이라는 어려움이 있다. 지카 바이러스와 현지의 불안한 치안에도 적잖게 신경이 쓰인다.

양궁 배드민턴 태권도 유도 레슬링과 구기종목에서 여자 배구, 여자 하키, 남자 축구 정도가 메달이 유망하다. 사격은 변수가 많고 여자 골프는 뉴질랜드 국적의 리디아 고가 난적이다. 한국이 우수한 성적을 내려면 메달권에 들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을 한 명이라도 더 데리고 가야 한다.

그래서 수영의 박태환을 둘러싸고 논란이 그치지 않는다. 박태환은 2015년 3월 국제수영연맹(FINA)의 약물검사에서 테스토스테론 약물 양성반응을 보였다. 박태환은 FINA로부터 18개월 선수 자격정지 처분을 받고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에서 획득한 메달이 모두 무효 처리됐다. FINA의 자격정지 기간이 지났지만 국내 규정(3년) 때문에 그는 리우 올림픽 출전 자격이 없다.

박태환의 출전 문제를 최종 결정할 대한체육회에는 압력성 메일이 폭주하고 있다. 올림픽 선수 선발을 겸한 동아수영대회에도 중국 팬들까지 나와 박태환을 성원했다. 표에 민감한 정치인들도 박태환을 리우 올림픽에 보내라는 목소리에 가세했다. 지상파 방송사들도 박태환의 명성에 따른 시청률 상승효과를 기대하는 듯 그의 출전을 지지하는 편이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박태환을 출전시키라는 요구가 70%까지 나온다. 최종 엔트리를 국제올림픽위원회에 제출할 7월 18일까지는 계속 이런 압력이 높아질 것이다.

박태환은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리우 올림픽 출전 금지가 이중처벌이라는 이유로 중재를 신청해 놓고 있다. 대한체육회가 CAS의 결정에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박태환이 네비도라는 근육강화 약물을 모르고 맞았는지, 병원 측의 실수였는지는 따져볼 필요도 없다. 네비도는 세계반도핑기구 1호 금지약물일 만큼 선수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주의 의무에서 ‘자기 책임’을 면제받을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28세인 그가 리우 올림픽에 출전한다 해도 메달권에 들리라는 보장이 없다. 베이징에서 금메달을 따고 런던에서 은메달을 딴 박태환의 현재 기록은 주 종목인 400m에서도 세계 랭킹 4위.

우즈베키스탄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선수에게 6억 원을 준다. 부정선거와 인권 탄압으로 26년째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은 취약한 지지 기반을 보완하기 위해 스포츠 국가주의에 의존하고 있다.

박태환을 위해 국가대표 선발 규정을 바꾸는 것은 스포츠 정신에 위배된다. 대한민국은 러시아나 우즈베키스탄의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황호택 논설주간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