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양대진 씨 가족의 단란했던 나들이 모습(맨위쪽 사진). 곧 태어날 둘째 아이를 기다리던 양 씨는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사랑하는 가족 곁을 떠났다. 곡성군청 미화원 장춘재 씨는 조의금과 함께 그를 추모하는 편지를 남겼다. 곡성군 제공
2일 오후 7시 광주 북구 그린장례식장. 이틀 전 아파트에서 떨어진 유모 씨(25·대학생)와 충돌해 숨진 전남 곡성군청 공무원 양대진 씨(39)의 장인(64)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힘없이 말했다. 사고 다음 날인 1일 오전 빈소를 찾은 유 씨 가족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양 씨 유족들을 찾은 건 유 씨의 아버지(57)와 형(28)이었다. 이들은 유족 앞에서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했지만 충격에 빠진 유족들은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유 씨 아버지의 ‘보상’ 약속도 거절했다. 두 가족의 불편한 만남은 한숨과 눈물 속에서 얼마 가지 않아 끝났다. 이 자리에서 유족들은 유 씨 가족이 43m² 크기의 영구임대아파트에 살면서 경제적 능력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유족들은 3일 광주 북구 영락공원에서 양 씨의 장례를 가족장으로 치른다. 유 씨의 장례는 2일 치러졌고 같은 공원묘지에 묻혔다. 양 씨의 장례가 끝나면 유족들은 유 씨 가족을 다시 만나기로 했다. 유 씨의 아버지는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네기로 했다.
남은 양 씨의 아내와 아들은 장례식 후 정든 보금자리를 떠날 계획이다. 양 씨의 한 유족은 “졸지에 가장을 잃은 사건으로 가정이 풍비박산 났다”며 “(유 씨를) 용서하면 좋겠지만 아직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투신자살한 유 씨도 어려운 가정형편에 취업 부담에 내몰린 청년이라니 답답할 뿐”이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평소 양 씨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은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곡성군청에서 미화원으로 일하는 장춘재 씨(74)는 2일 조의금 50만 원을 전달했다. 장 씨는 ‘양 주사(주무관의 옛 명칭)님, 청천벽력에 이게 무슨 일입니까. 부모를 탓해야 할지 세상을 나무라야 할지 이것밖에 드릴 말이 없습니다’라는 글도 함께 남겼다. 장 씨가 매일 오전 6시 군청 청소를 시작할 때 항상 첫 인사를 건네던 직원이 바로 양 씨였다. 장 씨는 3년 내내 가장 먼저 출근 도장을 찍던 양 씨를 떠올리며 “예의가 바른 데다 열성적인 인재였는데 어쩌다…”라며 울먹였다. 그는 “고인이 사고 당일에도 늦게까지 야근을 하다 변을 당한 만큼 반드시 공상처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남 곡성경찰서에서 홍보 업무를 담당하는 한 여경도 조의금을 전하며 “말없이 늘 성실했던 분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말을 남겼다. 양 씨의 공직 초임지인 경기 여주시의 한 공무원은 곡성군 홈페이지에 ‘성실한 친구였는데,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는데…’라는 글을 남겼다.
곡성군은 정례조회와 직원교육을 모두 취소하고 고인을 추모했다. 유근기 군수를 비롯한 공무원들은 밤늦게까지 빈소를 지키며 고인을 애도하고 있다. 곡성군은 양 씨가 순직처리될 수 있도록 힘을 모으고 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