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구조조정 재원 논란]
이달 말 여소야대(與小野大)의 20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벌써부터 사내 유보금을 둘러싼 양측의 대립이 첨예하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투자 및 고용 촉진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면서도 사내유보금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는 논쟁이 구조조정 풍파에 허덕이는 현 한국 경제 상황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 사내유보금 둘러싼 정치사회적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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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내유보금 논란이 산업 구조조정 정국과 맞물려 ‘반(反)기업 정서’로까지 번질 것을 재계는 우려하고 있다. 급기야 전경련이 17일 “대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을 등한시하면서 사내유보금을 쌓았다”는 정치권 및 노동계 비판에 수치를 들이대며 맞받아쳤다. 전경련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중 사내유보금이 많은 상위 10개 기업의 지난해 투자 규모는 전년 대비 54.1%가 늘어난 반면 하위 10개사는 45.1% 줄었다.
반면 4·13총선으로 거대 야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사내유보금을 법인세 인상의 근거로 삼고 있다. 지난 정권 때 법인세 인하로 얻은 이익을 대기업이 배당이나 근로자 임금 인상 및 고용 안정에 쓰지 않고 회사 배만 불렸다는 게 주요 골자다.
○ 현금성 자산은 미래 준비금
기업의 현금성 자산에 대한 무분별한 비판도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황에 따라 즉시 동원 가능한 현금성 자산이 꼭 필요할 때가 있어서다.
삼성전자는 2013년 사내유보금 중 현금성 자산의 비중을 23.3%까지로 끌어올렸다. 전년 대비 9%포인트 이상 늘린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를 기반으로 이듬해 10월 경기 평택시의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 공장에 15조6000억 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최근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중국이 정부 주도 아래 100조 원대 투자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삼성의 선제 투자는 빛을 발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 발표한 베트남 호찌민의 소비자가전(CE) 복합단지 건설 계획에도 삼성은 20억 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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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지난해 기업소득환류세제가 내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시행된 뒤 세금 역풍을 피하기 위해 배당만 집중적으로 늘린 기업들도 비판을 피해 가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또 대기업 오너나 경영진이 기업의 경영적 판단이 아니라 그룹 지배력 강화나 사적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현금성 자산을 쌓아 두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연강흠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주주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내유보금으로 지인의 회사나 사업과 관련성 없는 부동산에 투자하는 등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중요하다”며 “그러나 이는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가 아닌 법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해외에도 과도한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매기는 제도가 있긴 하다. 미국은 조세 회피 목적으로 설립된 경우만 적정유보초과세를 부과하고, 일본도 동족법인(3인 이하 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이 50% 이상)에 한해 10∼20%의 누진적정유보초과세를 내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정치권의 ‘투자 및 고용 촉진을 위한 사내유보금 과세’ 주장과는 차이가 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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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내유보금(Retained Earnings) ::
기업이 창출한 이익 중 주주들에게 배당하고 난 뒤 설비, 연구개발, 부동산 등에 재투자하거나 현금 및 단기 금융상품으로 ‘사내(社內)’에 남긴 누적 금액을 말한다. 재무제표나 법조항에는 등장하지 않는 회계학 용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