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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자의 생각돋보기]한국 좌파 사유의 뿌리 없음

입력 | 2016-04-23 03:00:00


미셸 푸코(1926∼1984)

좌파 매체에서는 그냥 아무 얘기나 하면 다 진실이 되나 보다. 세월호 2주년 관련 어떤 기고문은 만약 세월호에 ‘안산’이 아니라 ‘강남’의 아이들이 있었다면 304명 전원이 구조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또 그 희생자 중에 미국 시민이 있었다면, 침몰 당일 대통령의 7시간 행방이 지금처럼 2년 넘게 밝혀지지 않은 채 있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따라서 “단지 운이 없는 교통사고나 사적이고 개인적인 사건이 아니”라고 했다. 무슨 어려운 좌우 이념을 떠나 평범한 상식에 비추어 보아도 어처구니없는 얘기인데, 여기에 미셸 푸코의 이론을 갖다 붙이는 것이 더욱 기가 막혔다. “미셸 푸코에 따르면 국가가 지닌 통치권력은 생명과 죽음에 대한 권력인데, 세월호 참사는 국가가 죽음의 정치를 행사한 사건”이라나?

푸코는 광기, 사법, 병원, 섹슈얼리티 등의 분야에서 전통적인 관념을 완전히 뒤집어엎은 전복(顚覆)적인 철학자이지만, 이렇게 어설픈 억지 주장에 동원될 만큼 비합리적인 학자는 아니다. 푸코의 생체권력 이론이 담긴 책을 번역했던(‘사회를 보호해야 한다’·1998년) 나는 정확한 내용을 사람들에게 알릴 의무감 같은 것을 느낀다.

푸코의 평생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권력이었다. 우선 왕조시대의 절대 권력은 힘에 의지하는 무지막지한 권력이었다. 군주는 백성에 대한 생살여탈권을 갖고 있었다. 근대 이후 권력은 생명으로서의 인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규율권력과 생체권력(bio-power)이 그것이다. 규율권력은 감시를 통해 개인들을 통제하는 테크닉을 발전시켰다. 소위 판옵티콘 권력이다.

18세기 후반부터 권력은 개인이 아니라 인구 전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출산율, 사망률, 평균수명 등을 계량화하여 인구통계학을 만들었고, 산아 제한이나 출산의 개입을 통해 인구정책을 시행했다. 질병, 전염병 등에 대한 개입도 국가 권력이 떠맡게 되었다. 이것이 생체권력이다. 진화론 같은 생물학 이론이 정치 담론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시기였다. 그러니까 사람을 죽이는 데 능했던 절대 군주의 드라마틱하고 음울한 절대 권력이 이제 사람의 생명을 북돋우는 지속적이고 학문적인 권력으로 대체되었다. 전통학문은 이것을 복지의 증진, 인류의 진보로 규정했지만, 푸코는 이것을 권력의 교묘함으로 생각한다. 그에게는 모든 국가적 개입이 악이고, 모든 권력이 악이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권력은 단순히 한 사회의 지배층만이 아니다. 민원인에게 고자세로 대하는 말단 공무원, 연재 만화가에게 언어폭력을 가하는 언론사 하급 사원이 모두 권력이다. 시민단체는 거의 국가 권력에 버금가는 엄청난 권력이다.

여하튼, 생명을 목표로 하는 이 생체권력은 죽음의 테크닉을 동시에 구사함으로써 권력 본연의 사악한 이면을 노정한다. 인종들을 구별하여 등급을 매기고 좋은 인종과 열등한 인종으로 나눈 뒤 열등한 인종을 말살시키는 소위 죽음의 정치이다. 이 국가 인종주의가 절정에 달한 것이 나치 사회였다. 소련을 비롯한 모든 사회주의 국가들의 권력 패턴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죽음의 정치’란 푸코가 전체주의 또는 인종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도입한 개념이다. 나치, 소련, 북한 같은 나라들에 적용될 개념을 세월호 사고에 함부로 갖다 붙이는, 이 몽매(蒙昧)의 정치를 우리는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한국 좌파 사유의 뿌리 없음을 목도하는 순간이다.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