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단절/피터 왓슨 지음·조재희 옮김/828쪽·3만8000원·글항아리
수년 전 페루 쿠스코를 갔을 때 인디오계 현지인은 아르마스 광장의 대성당(La Catedral)과 석벽을 번갈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목소리에 자부심이 배어 있었다. 사실 쿠스코 시내를 가면 정복자 스페인 문명의 자취가 가득하다. 대성당만 해도 잉카시대 비라코차 신전을 깔아뭉개고 그 위에 지은 것이다. 스페인은 잉카 문명을 욕보이고 정복자 행세를 톡톡히 했다. 어쩌면 남아메리카 원주민 문명을 백안시하는 우리의 인식도 당시 스페인 사람들과 닮았는지 모른다.
기자 출신의 영국인 역사학자인 저자는 지난 1만6000년 동안 구세계(유라시아)와 신세계(아메리카) 문명이 서로 다른 길을 걸은 이유가 무엇인지를 집중 추적하고 있다. 아메리카 문명에 대한 선입견에서 벗어나 이들의 사회, 문화적 습성이 생긴 배경을 자연생태에서 찾는다. 예컨대 문명 발달 초기 몬순 기후가 지배한 유라시아는 유목, 농경 생활방식을 택한 반면, 사시사철 자연에서 식량을 구하기 용이했던 아메리카인들은 수렵, 채집에 의존했다. 이는 이후 두 문명 간 ‘거대한 단절’의 첫 분기점이 됐다.
페루 쿠스코에 있는 ‘산토도밍고’ 성당. 스페인 정복자들이 잉카의 태양신전 ‘코리칸차’를 허물고 지은 성당이다. 동아일보DB
저자의 결론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문명은 환경 적응의 산물이다. 구세계의 역사가 주로 양치기의 역할에 의해 규정됐다면 신세계는 주술사들에 의해 좌우됐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