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연구용역 등 세제 혜택 필요” 이경호 한국제약협회 회장 강조 지난해 대박 터뜨린 한미약품도 “은행빚으로 투자… 직원들 고생 많았다” 통상 10∼15년 걸쳐 1조 원 들어…약가 인상·정책 지원 등 뒷받침 있어야
최근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JW중외제약의 신약개발 연구실 모습. 국내 제약업체들은 신약을 미래 먹거리로 보고 연구개발(R&D)에 많은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이경호 한국제약협회 회장(66)은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효령로 한국제약협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약협회가 신약 연구개발(R&D) 비용에 대한 세제 지원을 정부에 공식 요청한 것이다. 한국제약협회는 국내 201개 제약사가 가입한 최대 제약단체다.
이 회장은 간담회에서 “약 개발의 마지막 단계이자 가장 중요한 임상 3상에는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간다”며 “R&D를 지속하기 위해 연구시설을 운영하거나 외부 연구용역을 줘야 하는데 여기에도 돈이 많이 든다. 이런 분야에 대한 세제 혜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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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십자도 지난해 주력 사업인 백신 부문에서 독감, 수두 백신의 수출이 51.5%나 늘었다. 이 때문에 녹십자의 지난해 해외 매출은 전년도보다 27% 증가한 2054억 원을 기록했다. 녹십자는 최근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범미보건기구(PAHO)의 2016년 남반구 의약품 입찰에서 3200만 달러(약 389억 원) 규모의 독감 백신을 수주하기도 했다.
정부 지원 없이는 신약도 없다
17일 서울 서초구 한국제약협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이경호 한국제약협회 회장. 동아일보DB
신약 개발은 성공할 경우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지만 실패 가능성이 높은 전형적인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 분야다. 통상적으로 개발에 10∼15년의 기간과 1조 원 정도의 비용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난해 국내 제약사 중 1조 원이 넘는 연 매출을 올린 곳은 한미약품(1조3175억 원)과 유한양행(1조1209억 원), 녹십자(1조478억 원) 정도다. 수천억 원의 연구개발(R&D) 비용을 꾸준히 투자할 수 있는 업체가 몇 안된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대박을 터뜨린 한미약품조차 수출에 성공하기 전 힘들었던 속사정을 털어놓은 바 있다.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76)은 “제약회사는 R&D가 생명인데 투자 여력이 없다. 은행에서 계속 돈을 빌려 투자해야 했다. 직원들 고생을 많이 시켰다”고 말했다. 한미약품은 2014년 매출의 20%인 1525억 원을, 지난해에는 1871억 원을 R&D에 쏟아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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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뒤늦게 제약 산업 육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은 최근 제약업계 단체장들과의 자리에서 “정부가 제약과 바이오산업을 육성하고 국내 제약사의 글로벌 진출을 도울 수 있도록 지원 방안을 찾겠다”고 밝혔다.
약가 정책도 개선이 필요하다
2014년 9월 멕시코에서 열린 보령제약의 고혈압신약 ‘카나브’의 런칭 심포지엄. 카나브는 멕시코 진출 1년만에 순환기 내과 ARB 계열 단일제 부문에서 주간 처방률 1위에 올랐다. 동아일보DB
다국적의약산업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신약 가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가의 44% 정도다. 과거에는 제약업체들이 복제약 위주로 생산해 국내에서만 경쟁을 하다보니 이러한 과정을 거치고도 큰 불만이 없었다. 문제는 제약사들이 신약 개발에 성공하고 해외 시장에 뛰어들면서 발생했다. 약을 수입하는 나라들은 대체로 최대한 낮은 가격을 요구하는데 이때 한국 내에서 낮게 책정된 약가가 기준이 돼 신약을 수출해도 돈을 벌기 힘든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낮은 약가 때문에 수출이 백지화된 경우도 있었다. 한 국내 제약사는 2011년 국내 최초로 고혈압치료제 신약 개발에 성공했다. 18년 동안 510억 원을 투입한 결과였다. 당장 해외에서 반응이 나왔다. 터키와 중남미의 몇몇 국가에서 약을 테스트한 의사들이 신약에 높은 점수를 준 것. 일부 중남미 국가에서는 실제로 수출 계약이 체결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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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반 년 만에 상황이 급변했다. 터키 제약사가 수출 단가를 터무니없이 낮은 수준까지 낮춰 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 업체는 수출 계약을 백지화했다. 터키 제약사가 요구한 가격으로 수출하면 다른 나라에도 비슷한 가격으로 수출할 가능성이 커져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제약업계에서는 “연구개발과 신약 바람이 부는 지금이 정책을 손볼 적기”라고 말한다. 이경호 제약협회 회장은 “낮은 약가 탓에 수출에서 수익이 안 나면 신약을 개발할 이유가 없다”며 “약가를 다소 높게 책정한 뒤 수출을 통해 번 수익의 일부를 보험 재정으로 돌려주는 방식을 시행하자”고 제안했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