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민정수석
두 사람은 서울대 법대 84학번 동기다. 최 차장이 지난해 2월 특별수사를 총괄하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에 임명됐을 때도 우 수석과의 친분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당시 최 차장은 “세간의 오해다. 그분과 그렇게 친분이 있지 않다”고 했다. 당시 해외자원 개발 비리, 포스코 농협 KT&G 비리 등 전 정권 인사 관련 사건이 유독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 용두사미에 그치면서 ‘청와대 하명수사’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런데도 최 2차장이 승승장구하자 ‘세간의 오해’가 깊어지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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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임명된 김수남 검찰총장은 2008년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재직할 당시 금융조세조사2부장이던 우 수석과 두터운 신뢰를 쌓은 것으로 전해졌다. 우 수석은 야인 시절 지인과 대화할 때 김 총장을 ‘형’이라 칭하며 극찬했다고 한다. 검찰 특별수사 라인과 우 수석의 친분도 눈에 띈다. 대검 중앙수사부의 맥을 잇는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을 이끄는 김기동 단장,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를 총괄하는 이동열 3차장 모두 우 수석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 수석은 2009년 ‘박연차 게이트’ 당시 대검 중수1과장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했다. 그해 5월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기수 선두주자였던 우 수석은 2013년 검사장 승진에 탈락하자 검찰을 떠났다. 하지만 이듬해 5월 대통령민정비서관에 임명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어 ‘정윤회 동향 문건 파동’을 거치면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물론이고 박 대통령으로부터도 신임을 얻었고, 지난해 1월 48세에 민정수석으로 승진했다. 연배를 중시하는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감안할 때 파격적인 발탁이었다.
여권 안팎에서 그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가 나돌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가 내부 감찰을 강화하자 대선 캠프 출신 청와대 인사들 사이에선 ‘우병우의 청와대’라는 말까지 나왔다. 청와대 파견 경찰이 ‘정윤회 문건’ 작성자로 확인되자 상당수 경찰 출신을 돌려보냈다. 현 정부 청와대에 파견된 경찰은 이명박 정부 당시와 비교해 3분의 1 수준이라고 한다. 경찰은 인사 검증 라인에서도 배제됐다. 일각에서 ‘검찰 독주 시대’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3월 이완구 당시 국무총리가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자 ‘막후 기획자’로 우 수석이 지목되기도 했다. 하지만 4월 해외자원 개발 비리사건에 연루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목숨을 끊으면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이 전 총리 사퇴로 현 정부는 치명상을 입었다. 이때 ‘우 수석 사퇴론’이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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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egija@donga.com·조동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