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간의 조금 긴 서울 출장을 마무리하고 어젯밤 경남의 끝자락에 위치한 바닷가 통영의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서울 시내를 누비고 다니면서 지치고 힘겨웠던 몸과 마음은 비릿한 바닷바람을 들이켜는 순간, 비로소 집으로 돌아왔음을 실감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새로운 힘을 충전하고 삶을 나누는 회복의 공간. 통영의 집은 내게 그런 곳이다.
대학을 졸업한 후 광고회사와 잡지사를 다니며 화려한 20대를 보낸 나는 결혼 후 작은 기획회사를 창업하면서 서울의 속도감에 편승하여 더 부지런히 달렸다. 앞만 보고 달리다 과로로 건강을 잃어 통영으로 내려왔고, 이주를 결심하면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집을 구하는 일. 1순위는 ‘바다가 보이는 집’이었다. 회색 빌딩 사이에 갇혀 살던 우리 부부는 집 베란다에서 바다를 마음껏 볼 수 있는 집을 원했는데 부동산 사장님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5분만 나가면 바다가 지천인데 굳이 집에서까지 바다가 보여야 할까, 바다가 보인다고 특별히 집값을 더 받기도 어렵고….” 토박이들은 오히려 습기와 바람 많은 바닷가보다 산 밑을 더 선호한다는 것이었다. 서울에서는 한강만 보여도 아파트에 프리미엄이 붙는데…. 이해되지 않았지만 다행히 우리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오래된 아파트를 구했고, 그곳에서 통영의 삶을 시작했다.
당시 1년의 안식년을 목표로 내려왔던 우리는 전세를 찾아 다녔지만 결국 집을 살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실수요 위주로 주택 거래가 활발했기에 전세는 매우 귀했고, 집값이 비교적 안정적이어서 대부분의 가정은 크든 작든 자기 집 하나만 소유하고, 그 이상 욕심을 부리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파트가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실거주 위주로 자리 잡은 낯선 도시에서 우리가 만난 것은 ‘집값이 안정된 사회가 가진 삶의 질적 만족도’였다.
통영살이 올해로 7년, 지역 출판은 5년 차다. 우리는 바닷가 생활을 정리하고, 산 밑의 허름한 주택을 고쳐 사무실과 주택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직도 만만치 않은 지역 출판의 현실 앞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천천히 흘러가는 지역의 시계추는 주변을 돌아보며 함께 나누며 가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것은 바다 풍경도, 고급 아파트도 꼭 내 것으로 소유해야만 한다고 가르치는 경쟁의 도시 서울에서는 결코 누릴 수 없는 행복이다.
※필자(43)는 서울에서 광고 회사와 잡지사 기자를 거쳐 콘텐츠 기획회사를 운영하다 건강을 잃어 경남 통영으로 이주했습니다. 2012년부터 출판사 ‘남해의봄날’을 창업하여 지역의 문화와 예술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정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