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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의 짧은 소설]커트

입력 | 2016-01-13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이기호 소설가

자를 것인가, 말 것인가? 두 시간을 기다렸다가 자를 것인가, 아니면 눈 감고 딱 이십 분 만에 후딱 자르고 나올 것인가? 나는 길 건너 상가를 바라보면서 잠시 그런 고민을 했다. 한 달에 한 번 머리를 자를 때마다 나로 하여금 갈등과 번민과 고뇌에 휩싸이게 만드는 이유는 단 하나. 상가에 있는 두 미용실의 차이 때문이다. 한쪽은 여자 헤어디자이너 세 명이 동업하는 곳이고, 한쪽은 남자 헤어디자이너 혼자 운영하는 곳이었다.

실력은 두 곳 다 나무랄 데 없으나 여자 헤어디자이너 쪽은 늘 대기 손님과 예약 손님이 넘쳐났고, 남자 헤어디자이너 쪽은 그렇지 않았다. 기껏 해야 한 사람만 기다리면 바로 자를 수 있는 수준. 그러면 당연히 그쪽으로 가야 하지만… 손님이 없다는 것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법. 남자 헤어디자이너가 있는 미용실은… 그곳 미용실의 유일한 헤어디자이너인 ‘존 김’이라는 사람은… 말이 지나치게 너무 많았다… ‘존 김’에게 머리를 자르다 보면… 이건 마치 주일 예배에 억지로 끌려 나가 한 시간 넘게 설교를 듣는 듯한 느낌, 혹은 어린 시절 월요일 아침 조회 시간마다 교장선생님의 훈시를 빙자한 자기자랑을 듣는 듯한 기분… 저절로 그런 기분이 되고 말았다. 가위질 횟수만큼 말을 많이 하는 남자,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면서도 계속 말을 하는 남자… 그것 때문에 손님이 하나둘 떨어져 나간다는 사실도 모르는 남자, 그것이 우리 동네 미용실 ‘존 헤어’의 사장이자, 헤어디자이너인 ‘존 김’이라는 남자의 단점이었다.

그래도 바로 자를 수 있으니까… 나는 발걸음을 천천히 ‘존 헤어’ 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곳 통유리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씩씩 화를 내며 점퍼를 챙겨 입는 내 또래의 남자와 마주치게 되었다.

“아니, 손님, 제가 뭐 나쁜 뜻으로 그런 말을 한 건 아니고요….”

‘존 김’이 남자 옆에 서서 미안한 표정으로 말을 했지만, 별 소용이 없어 보였다.

“됐다고요! 뭐, 내 아내가 뭐라고요? 당신이 뭔데 남의 마누라 치마 길이까지 신경을 쓰는데?”

“아니, 사장님… 저는 그게 아니고… 사모님이 잘못했다는 말이 아니고… 그게 요즘 우리나라 여자들의 유행이라는 말을 한 건데….”

“그러니까 그걸 왜 남의 아내한테 빗대 말하느냐고! 당신 아내 치마 길이로 말하면 되는 거잖아! 누가 당신한테 그런 말 듣고 싶대?”

“아, 그렇죠, 사장님… 저는 그냥 사장님과 농담도 하고 뭐 또 좀 친해지고 싶어서… 이게 다 동네에서 영업하는 입장이어서… 동네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사모님 얼굴도 제가 알고 있다는 것을 말하다 보니….”

‘존 김’이 그렇게 계속 말을 이어나가려 할 때, 남자는 내 어깨 옆을 지나 미용실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그래서 ‘존 헤어’ 미용실엔 ‘존 김’과 오직 나만 달랑 남게 되었다.

화를 내고 나간 남자 때문인지, ‘존 김’은 잔뜩 풀이 죽은 상태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내 머리칼을 자르기 시작했다. 내 언젠가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또 한편, 시무룩하고 힘 빠진 그의 어깨를 보자, 마음 저편이 무거워졌다. 차라리 그냥 계속하던 대로 떠드는 편이 낫지… 철컥, 거리는 가위질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미용실도 이게 다 감정 노동이라서… 쉽지 않으시죠?”

나는 불편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먼저 말을 걸었다. ‘존 김’은 내 말에 대꾸하지 않은 채, 계속 가위질만 해나갔다.

“남자 손님들은 그냥 말을 안 거시는 게 더 좋으실 거예요.”

나는 어쩐지 벌을 서는 기분으로 계속 말을 걸었다.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아요….”

‘존 김’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왜요? 그게 더 편하지 않은가요? 말을 하면 아무래도 더 피곤하실 텐데….”

“이게요… 다른 사람 머리를 보면요….”

‘존 김’은 거울 속 내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그 사람 성격이 다 보이거든요…. 가르마만 보고, 머릿결만 봐도요….”

‘존 김’은 잠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 보면 그냥 말을 걸고 싶어지는 거예요. 모른 척 넘어가는 게 더 힘들어서요….”

‘존 김’과 나의 눈이 거울에서 마주쳤다.

“근데, 손님… 손님은 이게 제가 딱 보니까 조금 털털하고 또 좀 무감각한 면도 있는 거 같은데, 그래서 드리는 말인데, 이번에 아예 염색도 하시는 게 어떨까요? 이게요, 두 시간이면 되거든요. 두 시간이면 십 년은 더 젊어 보일 수도 있으니까요.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요새 정치인들 헤어스타일을 보면요….”

‘존 김’은 어느새 다시 ‘존 김’으로 돌아와 있었다. 나는 단호히 커트만 하겠다고 말했다.

이기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