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만에 두 번째 시집 ‘무명시인’ 낸 함명춘씨
17년 만에 묶인 함명춘 시인의 시들은 소박하고 겸손하다. 그는 “앞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항암 치료로 손톱 빠진 자리에 골무를 끼고 구역질을 참느라고 얼음조각을 씹어가면서 글을 쓰던 고(故) 최인호 선생의 모습을 함명춘 시인(49)은 가까이서 지켜봤다. 최인호 소설을 여러 권 펴낸 여백출판사 편집자였던 함 시인의 자리는 최 선생 바로 옆방이었다. 가까이 온 죽음과 싸우면서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선생을 지켜보면서 그는 글이란 게 머리로 쓰는 아니라 몸으로 쓰는 거라는 걸 알게 됐다. 1998년 첫 시집 ‘빛을 찾아선 나뭇가지’를 내고 문학적 자폐 상태에 빠졌던 함 시인이었다.
19일 만난 함 시인은 “그 모습이 시를 다시 쓰게끔 채찍질을 했다”고 돌아봤다. 17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시집 ‘무명시인’(문학동네)을 들고서였다. ‘가진 것이라곤 푸른 노트와 몇 자루의 연필밖에 없었던/난 그가 연필을 내려놓은 것을 본 적이 없다 (…) 그가 떠난 집 마당, 한 그루 나무만 서 있을 뿐/도무지 읽을 수 없는 몇 줄의 시처럼 세월이 흘러갔다, 흘러왔다.’(‘무명시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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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명춘 시인(오른쪽)은 암 투병 중이던 최인호 선생과 여행을 다니곤 했다. 전남 순천의 송광사 불일암에서 두 사람이 팔짱을 끼고 있다. 백종하 씨 제공
오랜만의 시들은 일상적인 언어로, 어렵지 않게 쓰였다. 난해한 시 세계를 보였던 첫 시집과는 크게 달라졌다. 가령 새우나 물고기를 주인공으로 삼았지만 실은 조직과 제도에 묶인 인간의 모습을 그린 시편들이 그렇다. ‘어느 날 어부들이 풀어놓은 그물에 잡혔는데 덩치가 커서 바로 곡마단에 자기를 팔아넘겼다고 했다 눈을 떠보니 몸엔 흰 와이셔츠에 나비넥타이가 매어져 있었고 단원이란 사람들이 자신을 드러눕히곤 다리로 공을 굴리는 일을 시켰다는 것이다(…).’(‘새우전(傳)’)
‘그는 수년 동안 우물가인 듯 정수기 옆자리에서 일을 했다/하루 수십 번씩 물을 마셨고 회전의자에 앉아 한 번은/꼭 천장을 향해 두 서너 바퀴 회전을 했다.’(‘물고기’)
이런 변화에 대해 함 시인은 “일방적인 전달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감동과 재미를 주는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밝혔다. “언어에 대한 탐구에 몰입했던 예전과 달리 독자와 소통하는 시를 써 나가고 싶다. 더 많은 독자와 공감하고자 했던 최 선생의 글쓰기를 지켜보면서 깨달은 것이기도 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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