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불교유물 발견돼 사업 중단… 도봉구 2015년들어 재추진 계획 발표 불교계 “본래 절터… 전면 재검토를”… 유교계 “예정대로 건축 진행해야”
조선 후기 대표적 화가인 심사정(1707∼1769)이 그린 ‘도봉서원도’(위)는 당시 노론의 구심점 역할을 한 도봉서원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걸작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현재는 서원 건물이 모두 사라진 상태다. 2012년 서원 터에서 발굴된 금강령은 고려시대 불교 유물 중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건국대박물관·서울시 제공
17일 서울시와 도봉구 등에 따르면 도봉서원 터에서 불교 유물이 쏟아진 데는 ‘슬픈 역사’가 서려 있다. 고려 때까지만 해도 이 자리에는 원래 영국사(寧國寺)라는 절이 있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절은 폐사됐다. 그 대신 1573년(선조 6년) 사림의 거두 정암 조광조(1482∼1519)를 배향한 도봉서원이 들어섰다. 3년 전 발굴된 불교 유물은 모두 이 서원 건물 주춧돌 아래에 묻은 향로 안에서 나왔다. 학계에서는 이를 두고 “조선의 강력한 ‘숭유억불’ 정책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처럼 불교 유물이 유교 유적에서 다량 출토된 건 매우 이례적이다.
당시 도봉구는 지역 유림들에게 도봉서원 재건을 약속한 뒤 발굴조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불교 유물이 발굴됐다는 소식을 접한 조계종 등 불교계가 서원 재건을 반대하고 나섰다. 조계종은 8월 도봉구에 전달한 공문에서 ‘도봉서원은 영국사 터이며 조선시대 불교 탄압을 보여주는 상징’이라며 ‘재건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주장했다. 서원을 재건할 권한을 지닌 서울시도 이미 “국보급 불교 유구가 발견돼 당장 복원 추진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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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현재 진행 중인 도봉서원 유적의 ‘역사성 정립’을 위한 연구용역(7000만 원) 결과가 나오면 해결책을 검토할 방침이다.
이철호 기자 irontig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