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브라, 기억의 원점/이치은 지음/336쪽·1만3000원·알렙
이치은 씨(44)의 새 장편소설 ‘키브라, 기억의 원점’(이하 ‘키브라’)은 기억을 잃은 화자가 3월 28일부터 6월 13일까지 적은 일기가 얼개다. 1998년 ‘오늘의작가상’을 수상한 이래 이 씨는 앞서 ‘다른 사람의 꿈속에 들어가는 사람’(‘노예 틈입자 파괴자’), ‘총격전에 휩쓸리고 상관의 살해 누명을 쓴 대기업 대리’(‘유대리는 어디에서, 어디로 사라졌는가’) 등 순문학에서 보기 어려운 설정을 등장시켰다. ‘키브라’의 주인공은 기억상실증인 상황에서 자신이 연쇄살인범일지도 모른다고 고심하는 사내다. 자신이 살인자인지 아닌지 알아내기 위해 사내는 살인의 증거를 찾아 나선다.
작가는 소설의 인물로 하여금 살인이라는 행위에 대한 ‘소유권’을 획득하는 데 집착하도록 한다. 단서를 추적하고 정보를 구하며 이 과정을 충실하게 기록함으로써 화자는 살인의 소유권에 대한 확신을 갖는다. 그러나 화자가 만난 사람들이 “당신은 연쇄살인범이 될 수 없다”며 증언할 때 화자는 그간의 자신의 노력과 기록을 믿을 수 없게 된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