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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뷰스]거꾸로 진화하는 금융시장

입력 | 2015-10-26 03:00:00


신성환 한국금융연구원장 (홍익대 교수)

산업혁명 이래 모든 시장은 기술이 발전할수록 소비자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일례로 자동차의 성능이 아무리 발전해도 소비자가 복잡한 기술을 다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었고 운전은 훨씬 편해졌다. 이는 기술 발전에 따른 ‘시장의 진화’로 그 결과는 소비자의 효용 증가로 나타났다.

그러나 요즘 금융시장을 보면 진화의 방향이 거꾸로 가는 느낌이다. 금융 서비스가 수요자가 아닌 공급자 위주로 진화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복잡한 금융 상품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소비자들은 그 복잡한 상품들 사이에서 암호처럼 난해한 정보를 해독해 가면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금융시장은 오히려 퇴화하고 있다.

최근 인터넷 보험 슈퍼마켓이나 펀드 슈퍼마켓 등이 기술 발전에 힘입어 새로 등장했다. 그러나 마트에서 운동화를 사는 것처럼 소비자들이 이곳에서 보험 상품이나 펀드를 구매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대부분의 일반 소비자에게 이는 다양한 스펙의 자동차 부품을 나열해 놓고 자신이 원하는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부품을 선택하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양한 금융 상품이 전시돼 있는 슈퍼마켓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서너 개의 금융 상품 조합(포트폴리오)이 제시되는 게 소비자들에게는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금융 서비스 공급자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 또한 중고차 시장과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로 낮은 수준이다. 실제로 일부 금융회사들의 영업 행위를 보면 은행 프라이빗뱅커(PB)는 개인의 실적 쌓기에 유리한 예금, 펀드, 보험 상품을 판매하는 데 치중하고, 보험사는 ‘보험의 특성’이라는 명분으로 엄청난 판매 수수료를 미리 받아 간다. 증권사는 이미 해외에서는 시들해진 해외 상품을 들여와 ‘뒷북 판매’를 해 댄다.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의 몫이 돼 버린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금융시장은 소비자가 금융회사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쉽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진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금융시장에 ‘단순화’가 대세로 자리 잡아야 한다. 혹자는 단순화가 다양성을 추구하는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의 단순화는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단계의 단순화를 의미한다. 아무리 기술적으로 복잡한 스포츠카라도 소비자에게 전달될 때는 멋진 외관을 갖고 운전하기 쉽게 만들어진 완성차의 모습이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단순화는 공급자와 소비자 간 의사소통의 단순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암호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과 복잡한 숫자들의 나열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의사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도록 정보가 전달돼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서비스 공급자들은 금융 교육을 통해 소비자가 암호 해독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전형적인 공급자 위주의 사고로 소비자에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단순화는 소비자의 신뢰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책 당국은 필요하다면 단순화의 과정 및 결과물에 대해 신뢰를 보강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 소비자의 신뢰가 깨지지 않도록 금융 감독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국내 금융회사가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고 수요를 충족시켜 줄 수 있을 때 비로소 국내 금융산업의 경쟁력이 국제 수준으로 올라서게 될 것이다.

신성환 한국금융연구원장 (홍익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