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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新명인열전]“감칠맛 나는 남도김치의 레시피 기록…‘감성코드’ 담았어요”

입력 | 2015-10-26 03:00:00

<24> 김지현 광주여대 교수




김지현 교수가 24일 광주세계김치축제가 열린 광주 남구 임암동 김치타운 내 남도 김치 100선 전시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 교수는 남도 김치에는 무등산 수박으로 만든 깍두기 등 독특한 맛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고 개성이 있듯 김치 맛도 다 달라요. 요리법이 다양해지면서 전라도 김치 맛의 원형을 찾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제22회 광주세계김치축제가 열린 남구 임암동 김치타운에서 24일 만난 김지현 광주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48·여)는 ‘바람과 햇살, 숨쉬는 땅 남도김치’라는 요리책을 발간한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이 책은 김 교수와 대학원생 6명이 대대로 이어져 온 전라도 어머니들의 손맛, 즉 ‘레시피’(요리법)를 기록한 것이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6년간 한국국제요리경연대회에 출품해 각종 상을 받거나 전시됐던 전라도 김치 400여 가지 중 으뜸이라고 자랑할 만한 150가지를 뽑아 조리법과 비법을 담았다. 김 교수가 맛깔스러운 전라도 김치에 빠진 이유는 뭘까. 전남 보성 출신인 그는 1990년 전남대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에서 잠시 직장생활을 했다. 결혼을 하고 1997년 광주에 요리학원을 차렸다. “영양사는 사람들이 먹는 음식의 칼로리 등을 수치적으로 계산해 조리를 합니다. 그래서 음식에 ‘감성 코드’를 넣기가 쉽지 않죠.” 영양사로 일할 수 있었지만 요리학원 원장 길을 택한 김 교수는 1998년 제5회 광주세계김치축제에 김치를 처음으로 출품했다. 당시에는 광주 5개 자치단체에서 요리가들에게 출품을 요청했다. 지금은 기업이나 음식점 등지에서 다양한 종류의 김치를 내놓지만 그때는 김치 요리 전문가들의 경연장이었다.

김치는 2001년 국제식품규격위원회 총회에서 주원료인 배추에 고춧가루, 마늘, 생강, 파, 무 등을 혼합해 젖산 발효시킨 식품이라고 규정했다. 김치를 먹을 수 있는 때는 담근 직후부터이며 가장 맛이 좋은 상태는 산도 0.6∼0.8%를 유지하고 염도는 젖산균 1∼4%라고 발표했다.

김 교수는 한국 대표 음식인 김치의 효능을 당근을 먹는 것에 비유했다. “생당근을 씹지 않은 채 바로 먹으면 엄청 힘들잖아요. 이로 잘게 쪼개고 침을 혼합해야 위에서 부담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죠.” 김 교수는 “김치는 배추, 무 등 몸에 좋은 성분의 영양 가치를 높이는 대신에 나쁜 성분을 최소화해 쉽게 소화할 있도록 발효시킨 식품”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광주세계김치축제에서 5회부터 올해까지 감초 역할을 하고 있다. 17년간 축제에 참여하면서 남도 김치의 효능은 물론이고 그 속에 담겨 있는 정성의 손맛까지 알게 됐다. 28일까지 열리는 올해 광주세계김치축제의 주제는 ‘김치! 광주에서 세계로’다. 김 교수의 바람처럼 광주 김치 산업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동안 광주세계김치축제는 시민이 즐기는 전시, 공연, 체험행사 위주로 진행됐으나 올해는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콘셉트가 추가됐다. 기업과 계약 재배한 지역 농가의 배추로 김치를 담근 것이다. 해외 김치 바이어 23명을 초청해 수출상담을 하고 26일에는 중국, 베트남, 일본에 55만 달러어치의 수출계약을 맺는다. 광주 김치를 세계에 수출하려는 노력들이 결실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김 교수는 올해 광주세계김치축제에서 시민들이 체험하는 김치 담그기 행사와 남도 김치 100가지를 전시하는 책임을 맡았다. 그에게는 광주 김치를 세계화하려면 전라도 원형의 맛을 살려내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 전라도 말로 ‘게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라도 음식의 특징을 보여주는 게미는 ‘깊은 맛이나 음식 속에 녹아 있는 독특한 맛’을 의미한다. 게미가 있는 남도 대표 음식 중 하나가 바로 김치다. 남도 김치는 담글 때 쓰는 천일염과 멸치젓, 새우젓 등으로 양념을 많이 하고 찹쌀 풀을 넣어 진하고 감칠맛이 난다.

김 교수가 전라도 김치의 맛은 손맛에 달렸다고 하는 이유가 있다. 강원도 배추와 전남 해남 배추가 전국에 유통되고 부추가 전국에서 재배되는 등 김치 재료의 차이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각 집안의 김치 보전 비법이 냉장고가 보급되면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도 손맛을 살려야 하는 이유다.

김 교수는 ‘바람과 햇살, 숨쉬는 땅 남도김치’라는 책에 전라도 지역별 김치 이야기, 남도 김치의 재료 및 분량, 담그는 법, 더 맛있게 담그기 비법을 담았다. 계절별 김치나 조선시대 요리책에 적힌 옛 김치를 재현하고 소금 양을 줄이기 위한 말랭이 김치나 콜라비 깍두기, 토마토 소박이 등 새로운 김치 담그기 방법도 소개했다.

김 교수는 전라도 발효음식 비법을 찾기 위해 장흥 위씨 집안을 방문했을 때 식물 파초(芭蕉) 줄기를 죽순처럼 멸치젓갈에 넣은 뒤 밑반찬으로 먹는 것을 처음 발견했다. 장흥 위씨 집안에서는 오래전부터 음식 저장을 위해 독특한 멸치젓 가공법을 사용했다. 굴이 많이 나는 고흥에서는 굴김치가 유명하고 장흥은 감태를 넣어 색다른 김치 맛을 선보이고 있다. 이처럼 전라도는 지역, 집안마다 젓갈과 소금, 부재료가 빚어내는 김치가 다르다.

“배추나 무가 재배되는 땅이 다르고 소금, 젓갈 맛도 또한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김치 맛을 낼 수 없어요. 그래서 책을 통해 전라도 김치 담그는 법의 원형을 제시했습니다.” 김 교수는 앞으로 남도 김치의 맛을 찾아 기록, 보전하고 알려주는 전라도 김치 전도사 역할을 계속할 생각이다.

김 교수에게 맛있게 김치 담그는 방법을 물었다. “김치에 들어가는 양념 20여 가지가 조화를 이룰 때 가장 깊은 맛을 냅니다. 그리고 레시피에 없는 정성이 들어가야 참맛을 느낄 수 있어요.”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