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욱 사진부 차장
기자는 톈안먼 동쪽의 호텔에서 중국 방송을 시청했다. 흑백 필름으로 기록된 항일전쟁 당시의 화면이 현대 군대의 칼라 동영상과 교차 편집돼 계속 나오고 있었다. 중국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의도인 듯했다. 중국 국가를 부른 미국 흑인 가수 이야기도 나왔다. 화면 속의 폴 로브슨은 중국어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구글 검색을 해보니 1976년 사망한 사람이다. 1941년 발매된 ‘일어나라, 신 중국’이라는 앨범에 실린 중국 국가가 미국에서 얼마나 인기를 끌었는지, 그가 생전에 미국에서 유명한 가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열병식이 있을 무렵 한국에서는 애국가를 만든 안익태의 친일 논란이 또 일었다. 일제강점기, 6·25전쟁, 이후의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외국인은 고사하고 우리 국민 모두가 동시에 존경할 만한 지도자와 상징 음악을 만들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현실에 마음이 아팠다.
행사를 참관하던 베이징 시민들도 무기가 지나갈 때와는 사뭇 다른 크기의 박수를 보냈다. 망원렌즈를 통해 그들의 얼굴을 봤다. 내가 만든 나라라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박수 소리의 크기는 윗세대에 품은 존경심의 크기처럼 느껴졌다.
지금 세계는 각각의 국가가 갖고 있는 과거와 현재의 자산을 잘 활용해 미래를 향해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최근 이른바 ‘국정 교과서’ 논쟁이 떠올랐다. ‘하나 된’ 역사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시도에 색깔론이 덧붙여지고 있다. 소셜미디어와 시민사회의 반응은 차갑다. 역사에 대한 자존감과 용서는 없어 보인다.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지 않은 교육부 장관이 이 시도를 끝까지 책임질 힘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신뢰와 열정이 있는가. 갑자기 중국이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변영욱 사진부 차장 c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