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생 모친 장례식장에서
박선생 소개로 만난 사람
엊그제 연로한 부친 묫자리 보러 가서
좋은 터 있기에 자기 것도 예약해 두었다며
그때 바로 옆자리 예약하는
자기 또래의 사내와도 인사 나누었다며
나중에 묘지 이웃으로 만날 사람이기에
굳게 악수도 나누었다며
처음 본 그가, 죽은 뒤에나
이웃으로 만날 그 사내였기에
점심에 서로 술 한 잔 따라주었다며
빈 잔에 소주 가득 따라놓았네
주변에 함께 앉은 사람들
껄껄껄 허공에 빈 잔 하나씩 채워두었네
어느 사이 상가는 온통 이웃을 위한
이웃의 빈 잔으로 가득 찼네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살기 팍팍하고 인심이 나빠졌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뉴스를 보지 않아도 사람 많은 데 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보면 금세 그게 느껴진다. 소음과 추태든 무관심과 외면이든 주위에 사람이 없다는 듯 하는 행동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다. 우리는 이웃도 ‘동네 사람들’도 없는 험악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층간 소음 때문에 아래윗집이 서로 피를 보기도 하는 마당에 어딜 가도 온전한 방심은 어렵겠지만, 이 시는 그게 가능한 곳 하나를 알려준다. 세는 비싸다.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도 ‘묫자리’를 보러 가서 저승 이웃과 우연히 맞닥뜨린 것이 시인에게는 흔연했던 모양이다. 마침 상가이기도 해서겠지, 누구도 접한 적 없는 저세상 견문을 무용담처럼 늘어놓는다. 그가 그 사내의 빈 잔에 술을 채우자, 모두 제 미래의 이웃이 궁금해져 허공에 빈 잔을 떠올려 상상의 술을 따른다. 이사도 제 뜻대로는 못할 그곳에서 어떤 이웃을 만나게 될까. 설마 이곳 같기야 할까. 즐겁지만 텅 빈 기대로 상가는 불현듯 흥청거린다.
이영광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