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재란이 일어난 1597년 8월 15일 전남 보성읍성 내 열선루. 열선루는 보성읍성 가장 높은 곳에 있어 당시 군사지휘소 역할을 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열선루에서 선조가 보낸 선천관 박천봉에게서 밀지를 건네받았다. 밀지에는 “조선 수군이 미약하니 육군에 의탁해 싸우도록 해라”라는 수군 폐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10여 일 전에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해 삼남 지방을 돌며 병사, 전선, 군량미를 모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왜군은 이순신 장군을 죽여 조선 수군의 재건을 막으려고 집요한 추격전을 벌였다.
이순신 장군은 밀지를 본 직후 “지금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나이다(今臣戰船 尙有十二). 죽을힘을 다해 싸운다면 능히 대적할 수 있사옵니다”라는 내용을 담은 비장한 장계를 써 올렸다. 이른바 ‘상유십이’ 장계다. 이순신 장군은 장계를 올리고 이틀 후인 8월 18일 보성 율포 해안 인근 군학마을에서 바다로 나갔다. 전선 13척으로 왜구 전함 133척을 격파한 명량해전의 서막이 시작된 것.
이순신 장군이 바다로 나간 후 8월 20일경 열선루는 불에 탔다. 이순신 장군을 추격하다 왜구가 보성읍성을 공격해 의병 1000여 명이 몰살당하고 성내 모든 가옥이 잿더미로 변했다. 1610년 보성군수 이직이 열선루를 복원했다. 당시 복원된 열선루는 고지도인 비변사 인방한지도에 담겼다. 열선루는 1800년대 보성읍성에서 큰불이 나 다시 잿더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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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군은 지역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역사적 문화재 재건축을 위해 열선루를 중건키로 했다. 보성군은 예산 90억 원을 투입해 열선루를 중건할 방침이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