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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기자의 談담]“여성과 청년이 희망… 향후 10년 글로벌 패션리더 1만명 양성”

입력 | 2015-08-24 03:00:00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




 《 그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 자리에 커다란 검은색 양(羊) 인형을 품에 안고 왔다.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총재 겸 성주그룹 회장(59). 지난달 말 서울 강남구 논현동 성주그룹 사옥 1층 MCM 매장에서 만난 그는 흰색 운동화와 셔츠, 감색 줄무늬 재킷의 경쾌한 차림이었다. “제 사무실에 있던 ‘블랙 시프(black sheep·검은 양)’를 데리고 왔어요. 제 별명이 검은 양이거든요. 흰 양들 속 검은 양. 제일 골치 아픈 말썽쟁이 막둥이. 그게 제 얘기잖아요.” 자칭 ‘검은 양’ 사업가는 대성그룹 창업주 고 김수근 회장의 막내딸로 태어나 부모가 반대하는 국제결혼을 했다가 이혼했고 홀로 외동딸을 27세의 숙녀로 키웠다. 1990년 패션 수입 업체인 성주인터내셔널을 창업해 이탈리아 ‘구치’를 들여와 팔았으며, 독일 명품 브랜드 MCM을 라이선스 제조로 팔다가 “언제까지나 남의 브랜드 하수인으로 지내지는 않겠다”며 2005년 아예 MCM 본사를 인수했다. 이제 연 매출 7000억 원대로 성장한 MCM은 현재 8조 원대가 넘는 국내 면세점 시장에서 루이뷔통, 카르티에와 함께 매출 ‘빅3 브랜드’다. 》



지난달 말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옥에서 만난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은 “인생에서 나의 소명은 내가 배우고 가진 것으로 여성과 청년, 중소기업을 최선을 다해 돕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김선미 기자

그동안 여성들을 향해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한다”거나 “고학력 여성이 ‘솥뚜껑 운전’만 하면 안 된다”며 사회 기여의 필요성을 직설적으로 쏟아냈던 그는 이번엔 “주요 일자리의 절반을 여성에게 의무적으로 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구 5000만 명 중 2500만 명의 여성을 무시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어요. ‘머슬(근육) 파워’ 시대는 가고 ‘감성 콘텐츠’ 시대가 왔잖아요. 국가 공무원, 국회의원, 대기업에서 무조건 여성이 절반 이상 돼야 해요. 이건 여권(女權)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문제입니다.”

여성, 권리만큼 역할도 찾아야

―‘여성 쿼터’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까.

“그럼요. 국가 경제의 생존이 달린 문제라고요. 한국 여성이 ‘이젠 내 삶을 살래’라며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게 인구 절벽 시대를 앞둔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게 다 그동안 여자를 무시했기 때문이에요. 그 책임의 3분의 1은 여자의 희생을 요구하는 유교문화, 3분의 1은 남성들의 끼리끼리 문화에 있죠. 나머지 3분의 1은 불필요한 남 탓을 하며 자기계발을 놓친 여성의 탓입니다.”

‘여성 차별 해소’ 외침 속에 나왔던 ‘배려’들 중 일부는 여성의 잠재력을 제약한 측면도 있지 않을까. 여성이 권리만큼 역할을 찾는 데도 적극 나서란 얘기로 들렸다.

―여성인데 성공하셨습니다.

“사업하면서 술대접 안 해서 욕 많이 먹었습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투명 경영하며 글로벌로 훨훨 날 수 있었어요.”

―대한적십자사 총재로서도 책임을 느끼시지요.

“올해로 110주년을 맞은 대한적십자사를 글로벌 시대에 맞게 재탄생시키고 싶어요. 최근 30, 40대 여성 봉사요원으로 적십자 레이디스 클럽을 만들었어요. 한국 여성의 나눔과 봉사 정신을 사회운동으로 확산시키겠습니다. 여성들도 뛰어난 감성과 직관력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극기(克己)의 리더십을 갖춰야 합니다.”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이 지난달 서울을 찾은 패션 저널리스트 수지 멩키스 씨에게 명동 ‘MCM 스페이스’매장을 안내했다. 성주그룹 제공

―언젠가 적극적인 정치를 하실 건가요?

“하하. 전혀요. 전 체질상 직설적이어서 안 돼요. 정치판에 왜 들어가나요. 저처럼 사업하는 게 훨씬 사회적 영향력이 큰 시대예요.”

‘미스터 마미’와 ‘비즈니스 베이비’


인터뷰 전날 김 회장은 한국 출장을 나온 딸과 얼굴 맞댈 시간이 없어 회사로 불러내 점심을 함께 했단다. “제가 잔소리를 해서 딸이 눈물 그렁그렁해져서 갔어요. 딸이 ‘난 엄마처럼 아파 가며 낑낑대며 살고 싶지 않아’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말했어요. ‘내가 언제 나처럼 살라고 했느냐. 너의 시대는 다르다’고요. 아들이라고 수조 원 회사를 물려받고 딸이라고 쫓겨나는 시대는 지났잖아요.”

―‘늘 바쁘게 일하는 엄마’셨지요.

“해외 출장이 잦아 아이 입학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어요. 밤늦은 퇴근길 집 앞 성북구 삼선시장에서 3000원짜리 아이 티셔츠를 한 가득 사서 둘러메고 오기도 했고요. 사업 초기 여자라고 업신여김 당하기 싫어 남자 넥타이를 매고 다니다가 그대로 아이 학교 상담에 간 적도 있어요. 그때 어린 딸이 친구들에게 저를 이렇게 소개했어요. ‘얘들아, 우리 미스터 마미야.’ 딸은 줄곧 이런 말도 했어요. 엄마에겐 베이비가 둘이라고. ‘비즈니스 베이비’와 딸. 그런데 엄마는 비즈니스 베이비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이번에 김 회장은 그 ‘미스터 마미’ 시절의 넥타이를 딸에게 몽땅 물려줬다고 했다. “이제 나이 60에 매고 다니면 사람들이 미쳤다고 할까봐서요.”(웃음)

딸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했다지만, 김 회장은 딸이 자신처럼 살기를 바라는 건 아닐까. ‘내가 정답’이라는 자신감마저 느껴졌다.

워킹맘들을 향한 조언이 있나요.

“엄마는 가정의 최고경영자(CEO)잖아요. 엄마의 시간을 현명하게 분배해서 운영하세요. 엄마가 공부하고 일하고 봉사하면 아이도 똑같이 합니다. 첫째, 울타리를 넓게 쳐 주고 실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이를 통해 아이는 배우고 성장합니다. 둘째, 신앙심을 키워 주세요. 자신을 객관화하고 겸손하게 만드니까요. 셋째, 긍정적 사고의 힘을 길러 주세요. 스스로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을수록 위기에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제가 항상 바빴는데 오히려 그 때문에 저희 딸은 혼자 있는 시간에 책을 많이 읽어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게 됐습니다.”

‘MCM 패션 스쿨’ 설립 계획


올해는 성주그룹 설립 25주년, 내년은 1976년 독일에서 설립됐던 MCM의 40주년이다.

김 회장은 이제 브랜드 명성에 의존하지 않고 기능적으로도 앞서는 제품이 ‘럭셔리’가 된다고 믿는다. 그는 디지털 경영이 발 빨랐던 영국 ‘버버리’에서 최근 최고정보책임자(CIO) 등 주요 경영진을 ‘모셔’ 왔다. MCM 백팩을 히트시켜 소비자들에게 ‘손의 자유’를 줬던 그는 이제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접목한 ‘웨어러블’ 핸드백을 준비하고 있단다.

―럭셔리를 새롭게 정의하시는데요.

“새로운 세대가 추구하는 럭셔리를 저는 ‘뉴 스쿨 럭셔리(새로운 명품)’라고 이름 지었어요. 기존 올드 럭셔리처럼 거만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마음이 젊은’ 세대의 글로벌 유목민 라이프스타일을 타깃으로 삼죠. MCM은 소비자의 나이, 성별, 국경에 제한을 두지 않는 전략으로 개별 현지화를 추구해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MCM 인수 10년 만에 35개국에 12개 현지 법인, 1500명의 직원, 300여 개 백화점 매장, 120개 직영점을 운영하는 글로벌 강소 브랜드가 됐으니까요.”

―여성과 젊은층을 주목한다고요.

“내년 MCM 40주년을 맞아 서울 홍익대 앞에 신개념 콘셉트 스토어 ‘MCM 바우하우스’를 엽니다. 대개의 명품은 전 세계에서 같은 매장을 선보이지만, MCM은 각각의 특징을 갖는 ‘쇼퍼테인먼트(쇼핑+엔터테인먼트) 플래그십 스토어’를 지향하거든요. MCM 바우하우스는 한 단계 더 나아가 글로벌 패션 리더를 양성하는 교육 장소로 만들겠습니다. 여성과 젊은이, 중소기업처럼 그동안 약자였던 이들을 도와 ‘작은 거인’이 ‘큰 거인’이 되도록 돕겠습니다. 한 달에 약 100명씩, 10년간 1만 명의 글로벌 패션 리더를 길러 낼 겁니다. 성주재단이 지원했던 글로벌 리더들의 재능 기부 강의, 국내 170곳 MCM 공방에서 핸드백 기술 지원, 자신이 만든 제품을 MCM e-커머스(전자상거래)로 팔고 수익을 가져가게 하는 제도 등 온·오프라인 교육이 포함됩니다. 장기적으로 ‘MCM 김나지움’이라는 패션 스쿨 설립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검은 양’의 끝없는 도전

2시간여의 인터뷰 동안 그의 답변은 거침없었다. 도중에 그는 “점심식사로 죽, 괜찮으시겠어요?”라고 물었다. 흑임자죽과 잣죽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후식은 김 회장이 개발했다는 ‘김성주 표 진셍 라테’(인삼을 섞은 우유)였다. 3년 전 그의 ‘진셍(Ginseng·인삼) 쿠키’ 발언 논란이 떠올랐다. “애 젖먹이면서 주방에 앉아 ‘진셍 쿠키’를 만들었다고 구글에 올리면 전 세계 주문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해 세상 물정 모른다는 비난을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식사 시간도 아까워 사무실에서 죽을 먹는 그에게 ‘진셍 쿠키’ 발언은 그때나 지금이나 ‘진심’이다. “진셍 라테야말로 맛있고 건강한 ‘코리안 드링크’예요. 언젠가 사업 다각화 측면에서 각국에 ‘MCM 카페 체인’을 열어 진셍 라테, 진셍 쿠키, 진셍 팥빙수를 세계인들에게 알릴 거예요.” 글로벌 무대를 향한 야심뿐 아니라 몸에 좋은 것을 먹이고 싶어 하는 ‘한국 어머니의 마음’도 엿보였다.

과학적으로 흰색 양에서 돌연변이 검은 양이 태어날 확률은 0.001%에 불과하다고 한다. 김성주라는 ‘검은 양’은 말했다. “글로벌 대해(大海)를 향해 통통배를 타고 출발해 여기까지 왔네요. 여성과 청년 육성이라는 제 소명을 생각하며 한국이 글로벌 패션 시장으로 나가는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과 해상의 실크로드)를 만들겠어요.”

김 회장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는 우리 사회가 ‘검은 양’들의 큰 비전과 도전을 너그러운 시선으로 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로운 생각과 사회의 변화는 ‘검은 양’에 의해 이뤄질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러했듯이.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