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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는 못 찾을걸, 눈썹 0.001mm 그을린 흔적

입력 | 2015-07-29 03:00:00

[증거는 말한다]<2>범죄 꿰뚫는 눈, 휴대 영상 현미경




미세 증거 전문가인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송성준 경위가 현장에서 채취한 손톱을 관찰하고 있다. 경찰청 제공

지난해 2월 서울 마포경찰서 진술녹화실에서 박 씨(76)를 만났어. 영장에는 ‘다세대주택에 사는 이웃 할머니를 폭행해 숨지게 하고 이를 감추려고 불을 질렀다’고 적혀 있었지. 나만큼이나 형사들에게 인기 좋은 유전자검사 기기가 ‘할머니 손톱 아래에서 박 씨 유전자가 나왔다’는 결과지를 출력해 주자 박 씨는 살인 혐의를 인정하더라고. 하지만 불을 질렀다는 혐의는 계속 부인했어.

내가 나설 순간이 온 거야. 그의 손등과 눈썹을 크게 확대해 형사도, 그도 볼 수 있게 화면에 띄웠지. 불길이 순간적으로 확 치솟을 때 손등의 털과 눈썹 끝자락이 그을려 뭉툭하게 변한 게 확연하게 보였어. 눈으론 절대 알 수 없는 범행의 증거였지. 그제야 박 씨가 고개를 떨구더라고. 내가 누구냐고?

나는 명탐정 셜록 홈스 뺨치는 휴대용 영상 현미경이야. 사람이 맨눈으로 찾을 수 없는 미세 증거를 볼 수 있지. 바퀴 달린 커다란 여행가방처럼 생겼어. 가방을 열면 200배 확대가 가능한 디지털 현미경과 모니터가 들어 있지. 현장에서 촬영, 재생, 녹화가 가능해. 형사들이 내게 고맙다고 하는 이유야. 내가 없었을 때는 현장에서 얻은 미세 증거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야 했거든. 하지만 이제 전국 200여 개 경찰서마다 나를 써서 0.001mm 크기의 미세 증거를 확인할 수 있게 됐지. 용의자 추적을 시작하는 시간이 그만큼 빨라졌단 뜻이야.

미세 증거는 쉽게 사라지지 않아. 60대 식당 여주인이 신체 일부에 틀니가 박힌 채 사망한 안타까운 일이 있었어. 형사들 손에 들려 현장에 가보니 범인은 부엌 나무문을 뜯고 들어와 범행을 저질렀더군. 사건 발생 10일 후 유력한 용의자가 붙잡혔어. 역시나 ‘식당에서 밥만 먹고 나왔다’며 발뺌했어. 하지만 그의 옷소매가 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사람 눈엔 보이지 않던 식당 나무문 재질과 똑같은 목재 가루와 여주인이 입었던 빨간 스웨터의 미세한 섬유 조각이 선명하게 화면에 나타났어. 열흘 만에 형사들이 집으로 퇴근할 수 있었지.

내가 꼭 나쁜 사람만 잡아내는 건 아니야. 한 여고생이 50대 초반 남자에게 성폭행당할 뻔했다고 경찰에 신고했어. 여학생은 저항하다 얼굴을 맞아 코피까지 흘렸지. 신고 10분 뒤 근처에서 급하게 무단 횡단을 하던 중년 남자가 붙잡혀 왔어. 여학생은 보자마자 “바로 저 남자예요”라고 소리쳤어. 나도 화가 나 그 어느 때보다 정밀하게 눈을 들이대곤 남자의 손과 손톱, 옷가지에 여학생의 살점이나 혈액, 옷 섬유 조각이 없나 살폈지. 터럭 하나도 나오질 않더라고. 여학생이 당황해서 무턱대고 범인으로 지목한 사건이었어. 나는 억울한 사람 만들지 않는 데도 아주 요긴하다니까.

세상이 복잡해지고 범죄 수법도 교묘해지면서 내 인기는 갈수록 올라가는 중이야. 그러다 보니 살인이나 방화, 강도 같은 강력 범죄 현장에 과학수사요원 손에 들려 자주 출동하고 있어.

프랑스 범죄학자 에드몽 로카르는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란 명언을 남겼어. 미세 증거를 확보하면 범인이 현장에 있었고 피해자와 신체 접촉한 사실을 밝힐 수 있다는 뜻이지. 미국 과학수사계에는 “수사란 체모와 섬유와의 전쟁이다”란 말까지 있어. 앞으로 영화에서처럼 즉시 정확한 성분까지 분석 가능한 내 후배 현미경이 나올 거야. 홈스의 돋보기는 이제 잊고 나와 내 후배들의 활약을 기대해 줘!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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