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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아의 정원의 속삭임]강렬한 남국의 정원

입력 | 2015-07-09 03:00:00


칸나, 생강, 토란, 분꽃, 아주까리는 이국적이면서 강렬해 열대 화단을 구성하기에 좋다. 오경아 씨 제공

오경아 오경아디자인연구소 대표

남도로 가는 길은 늘 설렌다. 좁은 국토라고 하지만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어느새 풍경이 달라진다. 산세가 달라져서기도 하지만 식물에 변화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전형적인 온대기후를 지니고 있지만 다시 세부적으로 나눠보면 중부와 남부, 영동과 영서, 그리고 호남과 호서 등으로 기후가 매우 다르다. 이 기후에 따라 생기는 가장 큰 변화는 역시 자생하는 식물군이다. 겨울 추위가 매서운 중부에 잎이 작으면서 호리한 형태의 식물군이 많다면 따뜻한 남쪽에는 잎이 크고 가지가 옆으로 더 뻗어있는 식물이 많다. 뭐 눈에는 뭐밖에는 안 보인다는 말처럼 적어도 내게는 남도를 찾는 일이 달라지는 식물의 자태를 보는 좋은 기회로, 눈 호강이 된다.

게다가 이번 남도 길에는 하동의 쌍계사도 들를 기회가 있었다. 남도의 풍경을 무엇보다 선명하게 중부와 가르는 대나무 군락이 들어서는 입구부터 압권이었다. 정원은 인위적인 조성을 최소화하고 주변의 자연을 맘껏 활용했다. 사찰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도 우리 조상이 발전시킨 정원 디자인의 원리를 충분히 짐작하게 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무엇보다 내 눈길을 잡아끈 것은 바로 ‘파초’였다. 파초는 바나나를 말하는 것으로 식물학명으로는 ‘Musa’라는 속의 식물이다. 하지만 우리가 먹는 바나나 열매를 맺는 종은 아니고 일찍이 중국에서 잎을 이용해 생활용품을 만들기 위해 대량으로 재배했던, 추위에 강한 종이다. 정원문화가 발달한 중국의 남부지방에서 이 파초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우리도 조선시대 정원에서 파초를 즐겼다는 내용이 문헌에 종종 나온다. 파초는 잎이 매우 크다. 꽃보다는 그 초록의 싱그러운 잎을 즐겼는데, 되도록 집 근처에 심어 비가 오는 날이면 파초 잎 위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즐겼다.

남도의 식물이 파초뿐만은 아니다. 오래된 마을을 걷다 보면 흔하게 발견하는 소박한 화단에는 아주까리(열대 아프리카 자생), 토란(열대 아시아), 분꽃(열대 아프리카 자생), 생강(동남아시아), 칸나(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자생) 등의 이국적인 식물이 가득하다. 열대식물들의 특징은 잎에 있다. 잎이 매우 크면서 색상도 짙은 초록에 줄무늬가 있거나 자주색을 띠기도 한다. 피는 꽃 역시 붉고, 노랗고, 하얗고 그 색상이 원색에 가까워 강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국적인 식물의 모양새가 우리의 눈길을 끌다 보니 농사짓기에 바쁜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화단에 칸나, 분꽃을 심어 그 색다름을 즐겼을 것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비교적 겨울이 온화한 영국은 열대식물에 대한 열망이 더 컸다. 오렌지, 바나나, 파인애플을 키워 보려고 수백 년 동안 온실을 발전시키는 데 열중했다. 그러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정원사, 크리스토퍼 로이드가 등장하면서 온실이 없이도 열대식물 화단을 조성할 수 있는 방법이 대유행을 했다. 로이드는 원예적으로 어떻게 열대식물을 관리해야 하는지 그 노하우와 함께 식물 디자인 방법을 제시한 이른바 ‘exotic border’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본격적인 여름이다. 습기와 더위로 몸과 마음이 지쳐 가지만 이 시기는 열대식물들에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조건이 된다. 특히 열대식물은 아파트 베란다 정원에서는 관리가 오히려 쉽기도 하다. 일단 열대식물 화단의 구성은 등장하는 식물부터가 조금 다르다. 아주까리, 칸나, 글라디올러스, 백합과 함께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토란, 생강을 추가해 키가 큰 칸나는 뒤로 배치하고 잎의 모양이나 꽃의 색감에 따라 구성을 잘해 주면 된다. 단, 이런 식물들은 지금 심는 것이 아니라 이른 봄에 심어야 한여름에 그 절정을 감상할 수 있다. 정원은 늘 미리 준비하는 장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열대식물의 알뿌리를 구하려면 식물시장보다는 오히려 재래시장을 방문하는 것이 좋다. 올해를 놓쳤다면 달력에 체크해 두고 내년 봄, 따뜻한 남도지방 재래시장 나들이 계획을 세워 보는 것도 괜찮다.

그런데 해를 거듭해 열대식물 화단을 지속해서 보고 싶다면 한 가지 수고로움이 필요하다. 늦가을 영하로 떨어지는 추위가 오기 전에 뿌리를 캐내 양파망과 같은 그물에 담아서 햇볕이 들지 않고 바람이 잘 통하는 서재 같은 곳에 보관하다가 이른 봄 다시 화단으로 옮겨 심어야 한다. 한 가지 팁을 더 주자면 열대식물의 알뿌리를 캐낸 화단의 빈자리에는 늦가을이 되었을 때 봄에 꽃을 피우는 수선화, 튤립, 크로커스의 알뿌리를 심어 주면 된다. 그러면 겨울을 나고 내년 봄, 화려한 알뿌리 식물 화단을 다시 감상할 수 있다.

오경아 오경아디자인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