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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500만달러까지 신고없이 해외투자

입력 | 2015-06-30 03:00:00

정부, 외환제도 개혁 2016년 시행




직장인 김모 씨(52)는 한 달 전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난 대학생 아들에게 3000달러를 송금하기 위해 은행을 찾았다가 낭패를 겪었다. 하루 2000달러 이상 송금하려면 아들이 해외에서 유학하고 있다는 걸 입증하는 서류를 내야 한다는 얘기를 은행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김 씨는 급한 대로 1900달러만 송금하고 이튿날 다시 은행을 찾아 1100달러를 추가로 송금했다.

이르면 내년부터 김 씨는 아들에게 외화를 송금할 때 이 같은 불편을 겪지 않아도 된다. 정부가 외화 송금액수와 관계없이 증빙서류 제출 의무를 없애기로 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29일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어 거래액에 상관없이 거래사유만을 설명하는 것으로 외환거래가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 등이 담긴 ‘외환제도 개혁방안’을 확정했다.

○ 카카오톡으로 해외송금 가능

정부가 외환 관련 각종 규제를 대거 폐지 또는 완화하는 방안을 내놓은 것은 ‘1999년 외환제도 체제’가 한계에 이르렀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외국환거래법을 도입한 이후 단계적으로 외환 자유화 조치를 취해왔다. 그러면서도 외환위기에 대한 트라우마 탓에 규제의 끈은 계속 쥐고 있었다.

하지만 대외거래가 급증하고 정보기술(IT)의 발달로 금융산업 환경이 급속도로 변화하면서 현행 외환제도는 한계에 부딪혔다. 1999년과 비교해 2014년에 외환거래는 6.6배로 증가하고 다양한 주체가 외환 업무에 뛰어들었지만 여전히 외환 관련 제도는 은행 중심 시스템을 벗어나지 못했다.

외환업무의 빗장이 풀리면서 그동안 은행에서만 할 수 있었던 외환 송금을 증권사, 보험사 같은 비은행 금융사는 물론이고 핀테크를 통해서도 할 수 있게 됐다.

정부가 이번 외환제도 개편을 통해 주목하고 있는 부분도 바로 전자지급결제대행업(PG·Payment Gateway)이나 외환이체업 같은 새로운 형태의 핀테크이다. 이 제도들이 도입되면 카카오톡이나 라인으로 해외에 송금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페이팔, 알리페이를 거치지 않고도 해외직구나 역직구 결제를 할 수 있게 된다.

외환 규제는 대폭 풀었지만 불법 금융거래에 대한 처벌 수위는 높아졌다. 그동안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국세청 관세청 금융정보분석원(FIU) 등 각 기관이 나뉘어 감시감독을 해왔지만 앞으론 공조체제를 구축해 공동 검사를 정례화하기로 했다. 불법적인 거래에 대한 형벌과 과태료 금액을 상향 조정하고, 범죄 수익의 몰수 추징을 강화하기로 했다.

○ ‘달러 퍼내기’ 본격 가동

정부는 이날 외환규제를 완화하면서 동시에 국내 기업들이 해외 인수합병(M&A) 시장에 적극 뛰어들 수 있도록 각종 걸림돌을 제거했다.

기업들은 M&A의 특성상 비밀리에 해외 M&A를 추진하려고 해도 정부 당국에 사전신고를 해야 하는 탓에 신속히 추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 한국의 해외직접투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7.9% 수준으로 선진국(47.1%)은 물론이고 개도국(18.7%)보다 낮았다. 하지만 앞으론 기업들이 금액 제한 없이 해외 M&A를 먼저 추진한 뒤 사후에 보고할 수 있게 돼 신속한 사업 추진이 가능하게 됐다. 일반적인 해외직접투자는 일정금액 한도(500만 달러 이하)까지 사후보고로 바꿨다. 해외 부동산 투자의 경우에도 100만 달러 미만 부동산이라면 먼저 취득한 뒤 사후에 보고해도 무방하다. 기존 외국환평형기금 외화대출의 상환 자금을 활용해 금융회사의 해외 M&A 인수금융을 50억 달러 한도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넘쳐나는 달러를 합법적으로 해외시장으로 돌려 원-달러 환율 인하(원화가치 상승) 압력에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조치로 경상수지 흑자에 따른 외환수급 불균형이 상당 부분 개선될 것”이라며 “기업들 역시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세종=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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