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맥주는 어쩌면 와인보다도 오묘하다.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기만 하면 서운하다. 풍미와 색, 거품까지 즐겨야 제대로 마시는 것이다. 맥주는 호프와 몰트 등 원료의 종류와 발효법 등에 따라 무수히 다양한 풍미를 가진다. 맥주 애호가들은 맥주를 마실 때 기포와 색, 향을 차례차례 음미하라고 권한다. 그러고 나선 본격적으로 맥주의 맛을 봐야 한다. 혀끝에 닿는 첫맛부터 시원한 목 넘김까지, 우리의 미각을 골고루 자극하는 맥주의 풍부한 맛을 말이다. 유명 주류업체들은 맥주 자체뿐만 아니라 개별 맥주 제품의 특성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는 맥주잔도 내놓고 있다. 》
최근 맥주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맥주 제품별 전용 잔을 수집하는 게 인기다. 전용 잔은 개별 맥주의 향과 풍미, 색깔 등의 특성을 극대화한다. ‘호가든’과 ‘스텔라 아르투아’, ‘레페브라운’, ‘산토리 프리미엄 몰트’의 전용 잔(왼쪽부터). 각 회사 제공
방법은 이렇다. 기네스 전용 잔을 45도로 기울인 뒤 부드럽게 맥주를 흘리듯 따른다. 이어 맥주가 차오르면 잔을 내려놓고 거품이 가라앉도록 기다린다. 그러면 맥주 색이 까맣게 변하면서 안에 있던 거품이 용솟음치듯이 올라온다. 동시에 잔 위로 풍부한 크림이 생긴다. 거품이 가라앉으면 다시 맥주를 채워 거품이 봉긋하게 잔을 덮는 정도로 마무리하면 된다.
맥주도 이젠 전용잔으로
덴마크의 ‘칼스버그’는 ‘트로피 글라스’라는 전용 잔을 쓴다. 축구 경기의 승리팀에 주는 트로피를 닮았기 때문이다. 잔을 들었을 때 손 안에 꽉 차는 묵직함도 거대한 트로피를 든 것 같은 느낌을 전달한다. 미끈하게 쭉 뻗은 잔은 칼스버그 특유의 쌉쌀한 맛과 깊은 향을 잡아준다. 중국의 칭다오 맥주 전용 잔은 입구가 넓게 퍼져 있어 칭다오 맥주 특유의 재스민향이 서린 청량감을 잘 느끼게 해준다.
벨기에 ‘레페브라운’의 전용 잔은 성배(聖杯)와 모양이 비슷하다. 1204년 벨기에 수도원에서 처음 제조된 이 맥주를 담는 잔은 중세 수도사들의 양조기술과 전통을 보여주는 듯하다. 사발 형태의 입구는 구운 맥아의 은은한 향과 달콤함이 어우러진 흑맥주의 특징을 살려준다.
벨기에 ‘호가든’의 ‘육각 글라스’는 은은한 오렌지 시트러스향이 풍부하게 퍼지게 하는 효과가 있다. 병에 담긴 맥주를 이 잔에 3분의 2 정도 따른 뒤 맥주병을 세워 부드럽게 돌리면 병 속의 맥주 효모가 활성화된다. 그러고 나서 병 안에 남아 있는 나머지 맥주를 거품 위에 천천히 따르면 더 맛있게 호가든을 마실 수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에는 국내 맥주회사들도 잇달아 전용 잔을 내놓고 있다. 롯데주류의 ‘클라우드’ 전용 잔은 곡선을 강조한 튤립 모양으로 거품의 풍성한 느낌을 강조한다. 입구에 모아진 거품은 맥주와 공기 사이에서 보호막 역할을 해 맥주의 맛이 변하지 않도록 돕는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